[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끝날 줄 모르는 러시아의 경제위기가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에서 시작된 외환 불안이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옛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 대(對)러시아 교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큰데다 근로자의 국경 이동이 활발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타지키스탄 GDP의 절반은 해외에서 일하는 국민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다. 키르기스스탄도 해외 근로자의 본국 송금이 전체 GDP의 33%를 차지한다. 해외 근로자 대다수는 러시아에서 일한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외국에서 일하는 국민이 고국으로 보내는 돈 가운데 80%가 러시아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다.
이들 근로자는 러시아에서 번 돈을 달러나 자국 통화로 환전해 본국에 송금한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다.
지난해 루블 가치는 달러 대비 84% 급락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하락세가 주춤했던 루블 값은 올해 들어 다시 급락세로 돌아섰다. 루블은 이달 들어서만 20% 더 떨어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러시아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본국 송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9% 줄었다. 타지키스탄 송금액도 20% 감소했다.
주는 것은 송금액만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러시아 수출도 줄고 있다.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의 대러시아 자동차 수출은 35% 위축됐다. 타지키스탄의 주요 생산품인 과일·견과류 수출도 급감했다.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중앙아시아 출신 젊은이들은 빈손으로 귀국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분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2009년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액이 28% 줄었다. 러시아에서 실직한 젊은이들은 어쩔 수없이 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급등하는 실업률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민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이는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정권은 몰락했다.
옛 소련 국가들이 러시아발 경제위기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골수 친(親)러시아 국가인 벨라루스는 루블과 동반 하락하는 자국 통화가치 방어 차원에서 지난달 기준금리를 50%로 올렸다. 외환거래에 30%의 세금을 매기는 극약 처방도 내놨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자국 통화 마나트의 가치를 19% 평가절하했다. 고정 환율제 유지가 어려워진 키르기스스탄은 사설 외환 거래소를 폐쇄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다.
지난 1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한 옛 소련 국가 경제 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성공 여부도 시험대에 올랐다. 러시아의 디폴트 설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상호 경제 의존도가 커지면 위기는 더 빠르게 확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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