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쪽에 남북으로 뻗어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에 사는 사람들을 흔히 '힐빌리(hillbilly)'라고 부른다. '시골뜨기'라는 다소 비하적인 뜻인데, 이 산악 지대 주민들은 대체로 자기 마을이나 주를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 세계인 줄 아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아마 이들에게 세계지도를 그려 보라고 한다면 옛날 사람들이 그랬듯 자기가 사는 나라를 한가운데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 놓을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래서 '우물 안'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들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외부세계에 나가본다는 것은 바깥의 낯선 곳에서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이 넓고 복잡하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그리해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보게 되는 것이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여행이 반드시 차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독서도 결국은 여행이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여행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탐색과 심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머무르느냐 떠나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벗어나느냐 넘어서느냐에 있다. 벗어나 본다는 것은 자기부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이란 곧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여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수십 개 나라를 다니더라도, 그 나라의 최고의 인물들을 만나더라도 자신이 어딜 다녀온 건지조차 알 수 없다.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수도 없다. 그러니까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곳으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이며 '누가' 가느냐인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곧 여행이라고 할 때 여행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자기혁신이 가능하다. 혁신이든 창조든 주어진 틀을 벗어나 보는 것, 넘어서서 그 너머를 보는 것, 자기를 버리고 내줌으로써 뭔가를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똑같은 말, 늘 똑같은 사고, 늘 똑같은 궤적만 맴돌 뿐이다. 이미 갖고 있는 빈약한 밑천으로 '조립'만 하거나 주물 생산밖에 못한다.
그런 사람은 괜찮은 기능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창조적인 일은 벅찰 듯하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기능인으로 일해야 할 이들이 이 사회를 디자인하느라 힘에 부쳐 하고 있다. 매우 안스러운 일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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