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동리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이 써온 습작을 처음 한 장 이상 다루지 않았다.
200자 원고지에 작품의 제목과 이름을 쓰고 나면 첫 장에는 두 문장 정도밖에 안 들어갔다. 두 문장만 읽고 작품을 논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김동리로부터 배운 소설가 방현석은 이 일화를 들려주며 "첫 문장, 첫 장면은 시작이 아니라 전체를 함축하고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방현석은 "첫 장면은 독자에게는 시작이지만 작가에게는 소설 쓰기의 마지막"이라고 강조한다.(방현석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방현석은 소설의 첫 장면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배경ㆍ일상ㆍ인물을 제시하거나 옛일을 회상하거나 또는 전체를 압축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사건이나 행동을 보여주면서 들어가는가 하면 의문을 던져 독자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한 가지 유형을 택한 다음에는 그것을 어떻게 시작할지 궁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초심자는 종종 이렇게 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절반으로 접은 뒤 앞의 반을 찢어서 버리는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체호프는 "대개 초보는 스스로 말하듯 '독자를 바로 이야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며 "대개 결과는 그 반대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다가 필요하지 않은 도입부를 붙이게 된다는 말이다.
체호프는 소설 실마리를 어떻게 풀었나. 그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부두에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고들 말했다. 작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었다."
아무런 설명 없는 이런 도입은 새로운 양식이었다. 체호프보다 약 200년 전에 활동한 대니얼 디포(1660~1731)가 '로빈슨 크루소'를 "나는 1632년에 요크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는데…"라며 시작한 것과 대비된다.
일반인은 요즘도 대개 디포처럼 글을 쓴다.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풀어간다. 소설가는 이야기의 소재를 전략적으로 재배열한다. 그러면서 독자를 가장 끌어들일 법한 대목을 맨 앞에 배치한다. 도입부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소재의 배열이 달라진다.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거나 그리로 이어지는 얘기를 던지며 시작해야 독자를 붙들 수 있다. 짧은 글일수록 이 점에 유념해야 한다. 수필이나 칼럼, 자기소개서도 이 양식이 흡인력이 있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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