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박근혜정부의 '증세없는 복지'에서 출발했다면 이번 논란의 근저에는 '사라진 중산층'의 분노가 있다. 이번 연말정산 논란을 주도하는 계층은 연봉 500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 가구다. 정부는 세법 개정을 하면서 자녀가 있는 중산층 가구는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확대의 복지혜택을 늘린 만큼 세액공제에서 다자녀나 교육비, 부녀자 공제 등을 줄였다. 그런데 이런 조세정책은 정부가 그간에 추진해온 복지, 교육, 출산과 육아, 고용정책 등과 불일치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A부장은 "복지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를 외치면서 연말정산은 중산층에 세금을 걷어 취약계층을 위해 쓴다는 정부의 설득이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정주부 B씨는 "저출산 고령화, 여성경력단절방지대책을 내놓고 나서는 애 많이 낳고 직장 다닌다고 공제를 안 해주겠다고 하니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통신비, 교통비 등 지출부담이 높은 항목을 중심으로 서민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부담이 줄지 않거나 더 늘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소득상승 없이 소득재분배만 외치는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중산층 기준의 모호함과 이들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의 부재가 있다. 정부는 연봉 500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를 세법상의 중산층으로 봤다. 대략 임금근로자 기준으로 100만명이다. 반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중산층은 중위 소득의 50~150%에 해당된다. 통계청은 2013년에 전체 인구의 65.6%가 이 구간에 해당한다고 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국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은 매달 515만원을 벌어 341만원을 쓰고, 35평짜리 주택을 포함해 6억6000만원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실제 중산층은 매달 416만원을 벌어 252만원을 쓰고, 27평짜리 주택을 포함해 3억8000만원의 순자산을 갖고 있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경우는 45%에 달한 반면 나머지 55%는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중산층의 비중은 줄고 적자가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09년 총소득을 기준으로 중산층 규모가 2009년 47.4%에서 2012년 41.3%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년도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가구 중 중산층의 비중은 2008년 31.0%에서 2009년 38.0%, 2010년 41.5%, 2011년 39.7%, 2012년 42.2%로 확대 추세를 보였다. 반대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된 흑자전환 가구 중 중산층의 비중은 2011년 50.3%에서 2012년 48.0%로 떨어져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51.4%)보다도 낮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중산층 70%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국정과제에서 제외됐다. 중산층 기준도 제각각이고 중산층 복원공약도 사라진 상황에서 중산층을 상대로 한 정치와 정책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이상적 중산층 수준에 대한 국민 인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히려면 소득·자산을 늘리는 기반 마련과 함께 여유로운 생활, 삶의 질 향상, 사회기여 문화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