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 표시 채권 가진 신흥국 기업 파산 위기 몰릴 수도…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미국 달러로 돈을 빌린 신흥국들이 연준(Fed)의 금리인상이 단행되면 심각한 채무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80년 남미 외채위기나 1990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보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은 '미 달러화 강세에 따른 신흥국의 채무상환부담 증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금융연구원은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의 통계를 인용, 지난해 신흥국 기업의 미국 달러화 표시 채권 발행 규모가 2761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치다.
신흥국의 미 달러화 표시 채권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1000억달러에 머물렀지만 점차 증가해 최근 3년 동안 해마다 2000억달러를 웃돌았다. 미 연준(Fed)이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을 펼친 덕이다. 신흥국 기업들은 낮은 비용으로 미국돈을 빌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달러화 강세가 복병이 되고 있다. 달러인덱스(미 달러화 대 19개국 통화)는 3분기 이후 오름세다. 여기에 더해 Fed가 금리인상에 나서면 달러화 채권을 보유한 신흥국 기업들이 줄도산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국에서 외화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브라질 설탕생산업체 비르골리투 지 올리베이라가 설탕가격 하락과 미 달러화표시 채권 발행에 따른 채무부담이 커져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 국영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나스는 지난해 3분기 실적악화 원인 중 하나로 미 달러화 강세가 지적됐다. 페트로나스의 부채 중 70%는 미 달러화 표시 채권이다. 국제금융협회도 올해 안에 러시아 기업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재발될 것으로 봤다.
반론도 있다. 신흥국 기업이 발행한 미 달러화표시 채권의 2/3 이상이 대기업이 발행한 우량채권이어서 리스크가 낮다는 것이다. 또 신흥국들이 외환보유고를 막대하게 쌓고 있기 때문에 위기재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올 1월부터 뚜렷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경기회복으로 연준이 올해 중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신흥국 기업의 채무상환부담이 더욱 증대될 가능성이 있어 대응책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인덱스 미 달러화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다. 미 연준이 26개 교역국 통화를 기준으로 교역량을 가중평균해 발표한다. 주요 지수는 블룸버그 달러인덱스인데 6개 주요 선진국에 호주 달러를 추가해 구성된다. 그밖에 19개 신흥국 통화지수, 주요지수와 19개 신흥국 통화지수를 합산한 26개국 지수가 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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