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1394년 10월 수도를 개경(개성의 옛 지명)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이른바 '한양 천도(漢陽 遷都)'다. 이성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수도를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우선 한양은 국가 재정운영의 중요한 몫을 담당했던 조세미(租稅米)의 수상운송, 군사지리적 조건 등이 개경에 비해 우수했다. 풍수지리설로 본 개경은 집터의 운이 틔고 복이 들어오는 기운인 '지덕(地德)'이 쇠해 새 왕조에 불길했다.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개경에 패망한 고려의 전통세력 기반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를 꾸려나가는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양 천도와 함께 조선은 500년간 왕조를 이어왔다. 한양은 조선의 수도이면서 정치, 문화, 예술의 집결지로 조선이 500년을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근간이 됐다.
지난해 주전산기 교체 논란으로 촉발된 'KB금융 사태'로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KB금융그룹이 지주 사무실을 이전한다. 13일부터 사흘간 서울 명동에 위치한 지주사 소속 재무기획부, 전략기획부, HR부, 홍보부 등 전부서가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건물로 터를 옮기는 것이다. 지주사는 2008년 9월 KB금융지주 설립 이후 줄곧 국민은행 명동 본점 건물을 사용해 왔다. 이른바 '여의도 천도'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부터 그룹 시너지 극대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지주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기는 것도 경영 효율성과 함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지주 부서들은 그룹을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주 인력들과 그룹 최대 계열사인 국민은행 인력들이 함께 모이면 웅장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 KB금융의 재도약을 위한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주 전 부서가 여의도로 옮기는 것은 조직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지난해 회장이 해임되고 은행장이 사임한 초유의 KB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특히 지주와 은행간 핵심부서들의 긴밀한 소통 및 협력 관계가 부족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명동과 여의도라는 지리적 거리차이와 이동시간 등의 불편함 때문에 대면관계가 부족했다.
KB금융지주 설립 이후 수년간 사용해 왔던 사무실을 새로 이전하는 것을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처럼 결단을 내렸다. 고민과 검토를 거쳐 방향을 설정했다면 실행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게 윤 회장의 경영방침이다.
변화의 시작이 실천이라면 그 원동력은 활기찬 조직 분위기에 있다. 여의도 천도가 성공을 하려면 지주에서 옮겨온 인력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필요하다. 여의도 이전이 지주에서 은행으로의 권력이동으로 변질되서는 안된다.
새시대에는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KB금융의 위상을 회복하는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차원에서도 지주의 여의도 이전은 바람직해 보인다. 직원들은 새로운 출발선에서 새로운 소통과 화합을 통해 다시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이같은 변화와 시도가 잃어버린 리딩금융그룹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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