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정치이벤트 아닌 '한반도 기적'제 1步로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남북관계는 지난 70년 동안 양측의 정치 상황에 따라 대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정치 지도자의 결단과 장기 안목이 없이는 남북 관계개선은 어렵다는 것을 지난 70년의 역사가 보여줬다.
남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화에 나선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다. 박 대통령은 1970년 8월15일 '평화통일' 구상을 선언하고 이것이 계기가 돼 1971년 8월20일 남북 간의 최초의 대화인 적십자회담을 성사시켰다. 1970년 이전에는 1968년 1월21일 청와대 기습사건이 보여주듯 냉전구조가 지배해 대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북은 비밀접촉을 통해 1972년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7ㆍ4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기념비도 세웠다. 이어 판문점 예비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문제를 의제로 정한 남북 양측은 1972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례의 적십자 본회담을 가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1980년대 들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체육회담에 몰두했다.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과 1986년과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올림픽에 단일팀을 출전시키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북측의 호응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체육회담이 3차례 열렸다. 이어 1985년 10월부터 1987년 7월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4차례의 체육회담이 개최됐지만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1984년 여름, 남한에서 발생한 수해가 뜻밖의 선물을 안겼다. 북측이 구호물자 지원을 제의한 것이다. 판문점에서 적십자 접촉이 열렸고 1973년 이후 중단된 적십자 본회담도 재개됐다. 1985년 5월에는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에도 합의해 그해 9월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들이 서울과 평양 땅을 동시에 밟았다.
국민 지지기반이 취약해 북방외교 정책을 편 노태우 정권은 남북문제에 관한 '권리장전'이라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의외의 업적을 남겼다. 남북은 1990년 서울과 평양을 8차례 오가는 고위급 회담을 갖고 1992년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렇지만 북한 핵 위기가 터지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가장 큰 적극성을 보였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협력과 교류활성화를 통한 신뢰구축 등을 담은 6ㆍ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 진행됐다.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뒤이은 참여정부도 2007년 10월 평양에서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반면, 이명박정부는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응해 남북한 교류를 전면 중단하는 5ㆍ24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장기 경색 국면에 빠졌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2월 1차 고위급 접촉을 비롯해 32회의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겸 통일준비위위원회 정부 부위원장은 지난해 말 "상호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갖자"며 북한에 1월중 남북대화를 공식 제의했다. 이번 제의에 북한이 응할 지는 남북관계 진전 여부를 재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새해 들어 남북관계의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1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이 대화의지를 표명한데 대해 우리 정부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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