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주소록을 보면 / 아파트에 사는 시인들이 많다 / 나도 예외없이 아파트에 산다 / 옛날 시인들은 도산서원이라던가 / 완아초당에 몸담고 / 흐르는 시냇물에 몸 씻고 / 바람으로 담을 치고 / 밤이면 달빛과 별빛을 그릇에 한아름 담아놓고 / 벌레소리 들으며 시를 썼다 / 방안 가득 걸려있는 속옷이나 보고 / 자동차의 소음이나 밤새도록 듣는 / 현대의 아파트 시인들은 / 무엇을 쓰나
시인 배인환의 '현대의 시인은 아파트에 살고'라는 시다. 문인들마저 이럴진데 하물며 장삼이사야 더 말해 뭐하겠나. 땅을 베개 삼았던 옛 사람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공중에 겹겹이 떠서 잠을 청한다. 그 위 아래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체.
아파트는 현대 주거형태의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거형태는 2008년 그 비중이 크게 바뀌었다. 이때부터 전국 아파트 수가 단독주택을 앞지르기 시작했는데 지난해에는 아파트가 906만가구로 전체 주택에서 59.1%를 차지했다. 열 집 중 여섯 집은 아파트 생활을 하는 셈이다. 또 우리 국민들은 평균 3.8회 이사를 했는데 아파트를 최종 기착지로 삼는 경우가 많다. 생활의 편리함이 압도한 때문이다. 실제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 만족도는 66.5%로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의 그것(52.8%)보다 높았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아파트에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웃주민 간 층간소음 다툼이 사건ㆍ사고로 비화한 것은 올해도 여지없이 자주 발생했고 난방비리와 경비원 분신은 사회적 이슈가 됐다. 배우 김부선씨의 폭로로 알려진 난방비 비리는 일부 주민의 이기심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주민 폭언에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결국 숨진 경비원 이야기는 도시인의 각박한 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급기야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되는 경비원들은 관리비 인상을 염려한 주민들로부터 무더기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물론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몰인정하지는 않다. 경비원이 분신 사망한 아파트에서도 딱한 사정의 경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주민들의 선행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선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니 대다수의 선량한 주민들로서는 억울해 할 만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부 주민들의 경비원에 대한 비하는 도를 넘었다. 오죽하면 경비원을 두고 '현대판 머슴'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듯, 부실한 초기대응으로 해체된 '해경'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없애고 보는 것이 다반사가 된 요즘이지만 아파트에 문제가 많다고 아파트를 해체(?)할 수도 없는 일. 그래도 어쩌겠는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또 사람사는 세상인 것을.
'현대판 바벨탑'이라 할 정도로 실제 도시 건물들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파트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 12만7443동 중 20층이 넘는 아파트는 1만9099동으로 2010년(1만5184동)에 비해 약 4000동 늘었다. 30층 초과 고층 아파트는 1440동으로 3년 전(739동)에 비해 두 배에 달했다. 앞으로 이런 고층 아파트는 더 지어질 것이 뻔하니 현대 도시인으로 살아가려면 지금보다 더 부대끼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곳은 사람이 살만한 데가 못 된다'며 척박한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했다는 한 지인의 이야기가 그저 자조섞인 넋두리이길 기대하는 것은 희망일 뿐일지. 층층이 쌓인 '사각 틀' 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켜켜이 쌓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난방비도 안내면서 방안 가득 널어놓은 속옷이나 보고, 자동차 소음은 밤새도록 들으면서 윗집 소음에는 진저리부터 치고, 이웃살이하는 경비원을 머슴살이쯤으로 보는 현대의 아파트 주민들은 무엇으로 사나, 사색이 필요한 요즘이다. 단지 문인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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