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볼거리 확실한 역사뮤지컬...프랑스 혁명의 주제는 빛바래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사치스럽고 철이 없다. 낭비벽이 심하고 물정을 모른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단 부정적이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며 되지 않냐"고 말했다는 일화는 진위 여부를 떠나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태어나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생활을 누리고 끝내 단두대에서 처형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책이나 영화로도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이런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부분과 그 내면에 집중한 이는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고 평한다. 한마디로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극 중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람들을 쉽게 믿는" 성정 탓에 빈민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후에 가서는 자신도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그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와 음모도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1부에서는 화려한 왕궁생활과 은밀한 로맨스를 집중적으로 담아내고, 2부에서는 단두대에 오르기 전 남편과 자식을 걱정하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반대의 입장인 '마그리드 아르노'라는 가상의 여인 역시 극의 중심에 서있다. 거리에서 구걸하며 사는 마그리드 아르노는 사회 부조리와 상류계층의 위선에 분노하며, 빈민들을 이끌고 혁명에 앞장선다. 마침내 혁명이 성공한 후, 마그리드 아르노는 감옥에 갇힌 마리 앙투아네트를 직접 감시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처음에는 분노의 대상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그는 점차 이해와 동정을 느낀다. 이 뮤지컬의 초연 원작 제목인 'MA'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약자임과 동시에 상대역 마그리드 아르노를 줄인 말이다.
무대는 루이 16세 당시의 궁정 생활을 재현한 듯 호화롭다. 잔뜩 부풀려져 과도한 장식이 달린 드레스와 치렁치렁한 가발을 쓴 인물들의 등장은 마치 패션쇼를 연상시켜 굶주리고 헐벗은 빈민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대조를 이룬다. 매 장면 장면을 매끄럽게 전환시켜주는 회전무대의 등장도 볼거리를 풍성하게 해준다. 뮤지컬계에서 성량이 좋기로 손꼽히는 옥주현(마리 앙투아네트)과 차지연(마그리드 아르노)의 대결은 객석에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심어줄 정도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무대장치까지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작품이지만 주제 면에서는 다소 아쉽다. 오스트리아 제작진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반면 프랑스 혁명정신은 빛바래진 채로 결론을 맺는다. 혁명을 지켜낸 민중의 자발적 참여를 과소평가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두 주인공의 과거와 관련된 부분 역시 개연성이 떨어져 억지스럽지만 볼거리 하나만은 확실하다. 내년 2월1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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