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빅시리즈 #2. 단체여행 요우커 따라가보니
"한국 화장품 동양인 피부에 맞다"…짝퉁·진품 감별법도
관광은 대충, 쇼핑만 잔뜩 시키니…일정 너무해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요우커들의 여행 목적은 단연 쇼핑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국인 관광객 4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여행 기간 중 주요 활동은 쇼핑이 82.8%로 가장 높았고 식도락관광 47.7%, 시티투어 23.2%, 자연경관 감상 20.4%, 고궁·역사유적 방문 13.0% 순이었다. 쇼핑 품목으로 향수·화장품이 73.1%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의류 40.8%, 식료품 32.7%, 신발류 13.5%, 인삼·한약재 18.9% 등으로 나타났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눈을 통해 한국 관광의 명과 암을 살펴봤다.
◆한국 화장품·밥솥에 열광하는 요우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쇼핑을 마친 요우커 50여명이 관광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은 20~40대 여성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5박6일 일정으로 단체여행을 온 왕(王·여·31)모씨는 이날 원화로 30만원어치의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니 이니스프리, 잇츠스킨, 미샤 등 국산 브랜드 화장품과 홍삼과 귤로 만든 건강보조식품도 있었다.
면세점 안에는 더 많은 요우커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부분 20~40명의 일행들과 함께 온 단체여행객들로 정해진 시간 안에 쇼핑을 마쳐야 하는 탓에 한껏 분주한 모습이었다. 면세점도 요우커 맞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중국 유명배우 황샤오밍(黃曉明)을 모델로 내세운 시계 광고로 벽면을 장식해놓고 중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상품권을 증정하는 '888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888달러 이상 구매 시 5만원, 8888달러 이상 구매 시 50만원, 구매 금액이 1만8888달러를 넘으면 100만원을 깎아주는 식이다. 숫자 '8'은 중국인들에게 의미 있는 숫자다. 부자, 돈과 연관이 있다. '8'의 중국어 발음은 '빠'인데, '부자가 되다(發了)' '발전하다(發展)' 라는 뜻을 가진 '發(파)'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결혼식 하객들이 축의금을 낼 때 신랑신부에게 복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888위안, 8888위안을 내기도 한다.
젊은 중국 여성들의 마음을 독차지 한 건 단연 화장품이었다. 화장품 매장들이 모여 있는 3층에서 이브생로랑, 베네피트 등 해외 브랜드 매장은 한산한 반면 국내 화장품 코너들은 북새통을 이뤘다. 왕씨는 "중국에는 한국 화장품의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져 있다"며 "면세점 매장마다 중국말을 하는 직원이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면세점에서 만난 다른 요우커들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 예쁘고 피부 좋은 연예인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적당해서 선물하기 좋다" "동양인의 피부에 맞게 잘 만들어졌을 것 같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화장품을 대량 구입해 중국인들에게 온라인 판매를 하거나 한국 화장품을 파는 방문판매원이 등장할 정도다. 중국 포털사이트상에는 '한국 화장품과 짝퉁 화장품 감별법'이 올라올 만큼 관심거리다.
인기를 끄는 건 화장품만이 아니었다. 요우커들이 몰려 있는 곳을 뒤따라 가보니 가전제품 매장에 다다랐다. 쿠쿠 전기밥솥과 휴롬 원액기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부부끼리 온 중국인 손님들이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직원들은 새 상품 박스를 매장 안쪽에 옮겨 나르고 있었다. 한 판매 직원은 "전기밥솥과 원액기 두 상품만 하루에 60개 정도 팔린다"며 "특별히 홍보하지 않아도 중국에서 워낙 유명해서 미리 다 알고 사가는 인기 제품"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세금이 붙어 가격이 2배 비싸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부탁을 받고 여러 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쯤 되면 요우커는 진정한 '직구족'인 셈이다. 이 같은 '요우커 특수'로 쿠쿠전자의 면세점 매출은 2011년 477만달러에서 2012년 928만달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005만달러로 뛰었다. 해마다 면세점 매출이 2배가 된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 "한국 시민의식, 중국이 배워야"= 단체여행객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갈까. 명동에서 만난 관(官)모씨. 그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 해외여행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중국 푸지엔성(福建省) 난핑( 南平)시에서 온 그는 "10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며 함께 여행 온 9명의 일행 모두 같은 마을에 사는 농민이나 퇴직한 공장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 여행사에서 나눠 준 빨간색 모자를 살뜰히 쓰고 있었다.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하오. 사람들 표정을 살펴보면 다들 평화로워 보이지 않소. 적어도 어느 정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되니까 그러지 않겠소. 길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도 없고 공기도 좋고 환경도 깨끗하오. 확실히 의식수준은 중국 사람들이 배워가야 할 부분이요."
한국의 시민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관씨는 '큰손' 요우커라기보단 작은 지방도시에서 온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그가 선택한 쇼핑지는 명동지하상가다. 그의 일행 중 한 사람은 1만원대에 따뜻한 기모바지를 샀다며 보여주기도 했다. 2480위안(약 44만원)에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는 4박5일 일정으로 한국 관광을 하고 있었다. 일정 중 마지막 날이라는 관씨에게 여행 소감을 묻자 그는 중국 남방지역 특유의 사투리를 쓰면서 "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놀랍다"며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간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예찬은 계속됐다.
"난핑만 해도 놀이시설이나 문화시설은 하나도 없고 퇴직을 하면 노인들이 갈 데가 없소. 한국 좀 보오. 여긴 공원도 잘 돼 있고 밖에 나가서도 뭐 즐길 데가 많지 않소? 중국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너무 부족하오. 이 부분은 정말 중국이 보고 배워야 할 점이오."
관씨처럼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고 가는 요우커들이 많다. 단체관광을 온 요우커들은 버스전용차로 등 한국의 편리한 교통 시스템, 와이파이 이용과 빠른 인터넷 속도, 치안질서 등에서 점수가 후했다. 동대문과 남산 인근에서 만난 요우커들은 "한국인들은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버스전용차로로 관광버스가 이동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도시에 녹지 조성이 잘 돼 있다.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아 보였다" "외국인여행객들을 위한 관광센터가 곳곳에 있어 여행의 편의를 도왔다" 등을 한국에서 느낀 긍정적인 면으로 꼽았다.
중국 장시성(江西省)에서 단체관광을 온 왕잉(王英·47)씨는 "사실 지난해 홍콩에 다녀왔는데 물가는 비싸고 서비스는 별로여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한국에 온 지 아직 하루밖에 안 됐지만 예감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원들도 친절하고 관광지라고 해도 바가지요금을 씌운다는 느낌이 없어서 중국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끌려다니느라 시간만 낭비…이렇다 할 관광지 부족"= ‘오전 3시에 청주공항에 도착해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베개도 없이 매트 하나 깐 바닥에서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여행 중에 가장 무료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 간 돌솥비빔밥 식당은 내부가 좁고 사람들로 붐벼서 밥을 먹기 힘들었다. 둘째 날 저녁으로 먹은 삼계탕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소금만으로 간을 하고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서였을까? 심지어 토할 것 같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틀간 수원의 한 호텔에서 묵었는데 첫날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 제주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느라 4시간을 허비했다. 주변 분위기와 군중심리에 덩달아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었다. 말뼛가루, 꿀 등 특산물을 한 세트당 3000위안(약 53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총 다섯 군데에서 쇼핑을 하느라 부득이하게 긴 시간을 낭비했지만 단체관광이고 한국어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한국 단체여행 후기를 올린 중국인 네티즌 A씨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지난 5월11일부터 14일까지 그는 청주로 입국해 서울, 제주도 등을 들르는 단체관광을 다녀갔다. 단체관광 상품 가격은 2300위안(약 40만원). 여러 지역을 들렀지만 딱히 추억할만한 게 없다는 그는 이 글의 제목을 '어떤 감흥도 없었던 한국 단체관광'이라고 썼다. A씨는 "이번 여행의 느낌을 정리하자면, 좋지도 않았고 특별히 나쁜 점도 없었다. 이렇다 할 관광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총평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패키지 단체관광의 성격상 불만의 목소리도 없을 수 없다.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한 요우커는 "건강보조식품이 유명하다고 하면서 인삼 가게 등 상점에 자주 갔다. 나는 구입하지 않았지만 6000위안(약 100만원) 이상 쓴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우커는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한 느낌이고 차가 막히면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푸념했다.
여행객 B씨는 가이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5박6일간 서울과 제주도를 다녀온 B씨는 후기 상품평에 "가이드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면세점으로 이끌었다"며 "다른 관광지에 가면 시간을 지키라며 재촉했지만 면세점에 갔을 땐 천천히 쇼핑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관광지에 도착하면 그는 알아서 구경하라는 듯 자유시간을 줄 뿐이었다"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건 통틀어 2시간밖에 안 된다. 그는 마치 한국에 처음 와보는 것처럼 경험이 없고 지식도 부족한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저가 단체관광을 온 요우커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여행으로 자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여행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추억으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단체여행에 대한 불만족은 재방문 기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 의향은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 3.95점(5점 만점)으로 전체 외국인관광객의 평균보다 0.12점 낮았다. 외국인관광객, 특히 잠재적 관광 수요가 큰 요우커들을 위한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과 서비스 개선이 요구되는 이유다.
<기획취재팀>
취재=김보경ㆍ김민영ㆍ주상돈 기자 bkly477@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통역=최정화ㆍ옌츠리무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