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환율개입 말라던 이사람…"큰 틀에서 환율적응능력 키워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다시 환율의 역습이다."
2011년 10월 한 이코노미스트가 출간한 책 '환율의 역습'은 외환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이명박 정부가 고환율정책을 펼치던 때였다. 원고 수혜를 입고도 대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건설과 서비스업 등 내수업종은 고환율 부담에 쓰러졌다. 대ㆍ중소기업간 양극화는 벌어졌다. 원자재 가격까지 고공행진하면서 문 닫는 중소기업이 속출했다. 외환시장과 동고동락했던 조재성 신한은행 부지점장(당시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이코노미스트)은 외환당국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고 그 목소리를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책이 나온 지 3년이 흘렀고,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이코노미스트에서 압구정타운지점 부지점장으로 자리도 옮겼지만, 여전히 환율에 대해 궁금할 때 그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학 강의 요청도 들어오고 있고 환율에 관련된 글을 써달라는 청탁도 잦다.
최근 신한은행 압구정 지점 근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환율'은 시장의 최대이슈다. 원ㆍ엔환율 급락과 원ㆍ달러 환율 상승이 또다시 경제의 파고가 되고 있다.
조 부지점장은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수준은 예년에 비해 덜해졌다고 말했다. "MB정부 때는 특정레벨에서 고환율을 유도하는 정책이 팽배하면서 대기업에만 좋은 정책이 쏟아졌었어요. 물가가 올라 가처분소득도 감소하고 내수경기는 얼어붙었죠. 지금이야 그때만큼 개입 하진 않고 큰 틀에서 완충지대 역할만 하고 있는데, 이 정도 수준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속도조절은 필요하지만 환율시장의 트렌드를 인정해야 한다. 시장에 과도한 개입은 적절치 않다. 시장에 순응하면서 완충작용만 하는 게 옳다." 조 부지점장의 견해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을 잘 반영해주는 환율은 경상수지 흑자가 안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정도의 선이라고 본다. 그 수준을 넘어서 정부가 원화약세를 강하게 유도하다보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
"원화강세가 조금만 나타나도 정부가 개입해 위아래를 막아주게 되면, 기업의 환율 대응능력이 약해집니다. 특히 환율이란 게 양적완화 종료, 엔화약세 등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변수가 많아 정부정책으로 완전히 막아줄 수도 없는데 말이죠. 정부가 자꾸 개입하면, 기업들이 자꾸 정부만 쳐다보게 되고 악순환이 나타납니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엔화약세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원ㆍ엔환율은 2007년 상반기 740원까지 주저앉았었다. 조 지점장은 "당시에도 기업들의 환율체력을 조금 더 키워주는 쪽으로 갔었다면 지금 와서 엔저가 이렇게 큰 시장의 이슈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재정환율은 정부가 손을 쓴 방법이 없는데 큰 그림에서 기업들의 환율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ㆍ달러 환율이 단기급등하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 오히려 위기가 더 올 수 있다고 봤다. 단기간에 환헤지를 하지 못한 수입업체들이 모두 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게 되면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기준금리 인하로 환율전쟁에 동참해야한다는 시장의 여론과 관련해서는 선을 그었다. 조 부지점장은 "환율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가 맞물려 돌아가는 외환시장과 맞지않다"면서 "금리를 내리기 위해 환율을 빌미로 삼을 수 있지만 환율이 금리인하의 명분이 되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환율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기업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을 보면 2000년대 전까지는 엔화강세에도 꾸준히 수출이 잘됐었어요. 다만 2000년 들어 소니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적절히 변신을 못하면서 무너졌고 이게 성장률 둔화로 이어졌죠. 선도적인 기업이라면 환율이 급격히 절상되지 않는 한 환율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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