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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벽 안과 밖', 둘로 나뉜 '休'요일,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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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경찰차벽에 갇혀 있던 8월 마지막 수요일, 차벽 밖 도서관, 미술관, 문예회관 등 전국 1300여 곳에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서울 상명대 아트센터에서 평범한 이들과 더불어 융·복합 공연 '하루'를 관람하며 일상을 즐겼다. '하루'는 전통설화 '견우와 직녀'이야기를 연극, 무용, 영화, 뮤지컬 등 다중 장르를 융합해 만든 공연물이다.


바로 몇개월 전, 수많은 생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세상의 모든 춤과 노래가 함께 멈췄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온통 나라 안이 슬픔에 잠겨 조문하느라 숨죽여 모든 위락을 죄악시하던 때가 엊그제다. 일부에서는 "노래와 춤을 멈추게 하면 힘 든 세상을 무엇이 위로할거냐"며 딴지를 거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130여일 지나 희생자의 한을 풀어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차벽에 가둬놓고, 세상은 다시 노래와 춤판을 벌인다. 누군가가 "이래도 되나 ?",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 라며 반문한다.

'경찰차벽 안과 밖', 둘로 나뉜 '休'요일, '격세지감' 8월 마지막 수요일인 27일 전국 도서관 등 1300여 곳에서 '문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세종도서관 로비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성악가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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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세종특별시 호수공원변, 국립세종도서관 로비는 발 디딜 틈 없었다. 가족 단위에서부터 청소년 무리,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개중에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행사장 뒷편에 둥글게 늘어서 있는 이들도 많았다.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 50여곳에서는 '유쾌한 인문학'이 진행 중이다. 이에 세종도서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과 '유쾌한 인문학-창조적 상상력 BOOK 돋우는 책 읽기' 강좌가 함께 열렸다.

문화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내 남녀 성악가 두사람이 펼치는 음악 공연에 빠져 들었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과 영화 '모정'의 삽입곡, '오페라의 유령' 등이 불려지자 드넓은 도서관 로비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남자 성악가는 해설을 곁들인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어 외화번역가이자 작가인 '이미도'씨(53)의 강연이 시작됐다. 이씨는 자칭 '상상력 전문가'다. 특히 외화번역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슈렉',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 500여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똑똑한 식스팩' 등 여러 권의 저술도 냈다. 이씨는 여러 영상과 사례를 통해 창조적 상상력의 중요성, 책 읽는 즐거움을 얘기했다. 참석자들과 문답을 주고 받거나, 맞장구를 유도하며 멋들어지게 강연을 펼쳤다. 이씨는 "손안의 사과는 누군가에게 건네지면 남는게 없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아지고 커진다"고 말했다.


강연장은 때로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고, '아하 !' 하는 공감의 감탄사도 연방 터져 나왔다. 이씨의 강연 주제는 한마디로 책을 많이 읽으라는 얘기다. 또한 "좋아 하는 일을 미친 듯이 창의력을 발휘해 열심히 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요지였다. 청중들은 자기계발의 멘트에게서 해답을 찾은 듯 크게 만족한 표정이었다. 강연장에서만큼은 광화문 차벽 안 단식하는 이들의 고통을 찾아볼 길 없었다. 근사한 저녁, 더 없이 즐거운 문화행사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연장에 여러 동료들과 함께 나온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은 "오랫만에 다른 이의 얘기를 듣고 깨달은 게 많다"며 "좀더 창의적인 발상을 갖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일해야 겠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문화 공연과 강좌를 들으며 모처럼 제대로 된 휴식을 맛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의 밀레니엄이 '세월호의 전(前)과 후(後)'로 나뉘어진 것처럼 세상은 '차벽 안과 밖'으로 나뉘어졌다. 차벽 안쪽에서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치유를 맛봤고, 위로를 받고 고통과 분노, 피로, 우울을 달래며 '성공적인 삶'을 얻으려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8월, '문화가 있는 날'의 풍경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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