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디젤=한국수입차' 이 공식을 깨기 위해 고민했다
非유럽 브랜드로 최다판매 기염
한국의 車정책, 규제 풀고 일관성 가져야
[대담=노종섭 산업부장]"미국 차가 한국에서 더 많이 돌아다니는 걸 봤으면 좋겠다. Jae Jung이 충분히 잘 해줄 것으로 믿는다."
지난 4월 한국을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재희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이하 포드코리아) 사장을 이렇게 치켜세웠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기업 포드의 한국법인 대표로 14년째, 첫 입사부터 따지면 20년 넘게 자동차인(人)으로 살아온 이 외국계 기업의 한국인 사장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대표적인 1세대 CEO로 꼽힌다.
유럽산 디젤세단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포드의 위상은 독특하다. 단출한 디젤라인업으로도 최근 꾸준히 시장을 확대해 비(非)유럽 브랜드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올 상반기까지 팔린 차량만 4287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 전체 수입차 시장 성장세를 웃도는 수치다.
과거 수입차 시장이 막 열리던 시기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최근까지, 꾸준히 한국 자동차 시장을 지켜보고 있는 정 사장은 "아직 국내 수입차시장은 더 클 여지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수입차 1세대이자 한국 수입차 시장의 역사인 정 사장에게 자동차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근 도로에서 포드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비결이 뭔가.
▲ 하루 아침에 이룬 성과는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수입차 증가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내 수입차 시장은 독일 디젤차로 요약된다. 4, 5년 전부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 포드가 국내 소비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의 폭을 더 넓혀주는 쪽으로 접근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포드가 다운사이징(엔진배기량을 줄이면서도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인 만큼 에코부스트 엔진을 소개하는 등 가솔린엔진으로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수입차업계 처음으로 전 차종에 대해 무상보증기간을 대폭 늘리고 서비스센터를 확충한 게 주효했다고 본다. 마침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다각도로 준비하던 걸 조금 더 수월히 준비할 수 있었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 FTA 수혜는 유럽차가 미국차보다 한발 앞서 누렸다. 몇달 앞서 발효돼 관세도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럽산 중대형차는 이미 지난달 없어졌으나 미국차는 아직 4% 정도 남아 있다.
정 사장은 그럼에도 "FTA를 계기로 미국 본사에 적극적인 확대정책을 펴야한다고 주장했다"며 "향후 관세가 없어질 때 맞춰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 최근의 '디젤붐'은 수입차뿐 아니라 국산차까지 번졌다. 포드코리아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 포드 독일 공장에서 디젤엔진이 들어간 중형세단 포커스를 2년 전부터 들여와 팔고 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기 위해 유럽산 디젤차 라인업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단으로는 현재 유럽에서 판매중인 몬데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는 쿠가를 내년 중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포드는 미국 완성차회사지만 유럽에서도 낯설지 않은 브랜드다. 유럽 내 단일 브랜드 판매량으로만 따지면 독일 폴크스바겐에 이어 2위다. 과거 일부 유럽차 브랜드를 인수해 운영하기도 했지만 초창기부터 유럽 현지화전략에 따라 다양한 차종을 개발하고 판매한 덕분이다. 미국 브랜드임에도 디젤엔진 기술이 수준급으로 꼽히는 배경이다.
몬데오는 과거 포드 유럽법인에서 개발한 디젤세단으로 현재는 '원포드' 전략에 따라 포드의 주력 중형세단 퓨전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쿠가 역시 포드의 주력 중형 SUV 이스케이프의 '디젤버전'으로 보면 된다.
- 국내 수입차시장은 언제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나.
▲ 한국 승용차 시장이 100만대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아직 수입차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여지가 크다고 본사에서도 보고 있다. 연간 수입차 규모가 15만대인데 사실 현 수준보다 2배 늘어난다고 해도 30만대 정도에 불과하다. 수입 브랜드 비중을 따져보면 미국이나 독일이 40%, 이탈리아는 자국 브랜드가 있음에도 60%가 넘는다. 자국 브랜드, 수입 브랜드가 아닌 시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비가 과장된 부분에 대해 소비자 보상안을 내놨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소송도 진행중인데, 선제적으로 보상안을 준비한 배경은 무엇인가.
▲ 포드 본사 차원의 정책에 따라 전 세계 포드가 영업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본사에서 자체 실험한 결과 도로저항값에서 오류를 발견했고, 관련 부처와 협의해 소비자 보상안을 마련했다. 다른 기업들이 그렇듯 같은 시기에, 같이 적용하는 게 원칙이라 한국 소비자에게도 같은 보상안을 마련했다.
- 우리 정부가 내년 시행키로 한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해 국내는 물론 미국 완성차업체의 반발이 심하다.
▲ 포드가 미국 제작사라서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반대하는 건 아니다. 포드 역시 환경분야와 관련해서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환경정책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를 잘 살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20년까지 탄소저감 목표치가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거기에 저탄소차협력금제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면 이중규제가 된다. 현재 논의중인 가이드라인은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 자동차 이외에도 탄소를 배출하는 게 많지만 현재는 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불공정한 측면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더라도 미세먼지나 다른 유해가스를 줄이려는 논의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차원에서도 우리 정부에 해당 제도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 한국 정부의 규제는 어떤가.
▲ 현대기아자동차가 2000년대 이후 미국 시장에서 급격히 시장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일관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5~10년 이후까지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안정성(stability)이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이 불편을 겪는 부분이다. 특정 차량을 수입해 팔려고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일을 추진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안 된다고 하면 기업으로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가 없다.
정리=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사진=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
정재희 사장은…
국내 최장수 수입車 CEO
국내 수입자동차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물로 꼽힌다. 1992년 포드자동차의 한국시장 개발담당 매니저로 입사한 후 1996년 포드코리아가 출범할 당시 중추역할을 맡았다. 이후 200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포드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역 가운데서는 BMW코리아의 김효준 사장(2000년) 정도만이 그와 어깨를 견준다. 김 사장이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뒤늦게 자동차에 뛰어든 것과 달리 정 사장은 오롯이 자동차만 들여다봤다.
2012년 3월 한국수입자동차협회 9대 회장을 맡은 후 올해 초 한 차례 연임해 수행하고 있으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 이사회 멤버, 한국전략경영학회 (KSSM) 부회장 및 주한 글로벌기업 대표자 협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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