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복(三伏)의 초복이다. 복날의 복(伏)이 왜 '엎드릴 복'자냐고 묻는다면 더위 먹은 헬렐레 모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짜 의미는 사람(人)과 개(犬)가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언어라는 것의 명확성을 맹신하지 말라는 '앰비규이티' 교리에 제 1장으로 나오는 것이 "나는 개를 좋아한다(I love a dog)"이다. 먹는 개인지 먹이는 개인지 애매한데 그 차이는 몬도가네와 프랑스여배우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개의 민족이다. 개를 키우면서도 개를 잡아먹는, 남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안되는 두 가지 정서를 함께 지닌 애견겨레이다. 하지만 정말 그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잡아먹는 개는 구(狗)이고 키우는 개는 견(犬)이라고. 우리가 개를 높일 때 견공(犬公)이라 하지, 구공(狗公)이라 하는 거 봤느냐고.
사람이 개를 키우는 까닭은, 개는 사람말을 알아들으면서도 결코 배신하지 않는 점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개는 옳찮은 주인을 만나 매일 매를 맞아도 그를 미워하거나 물어뜯는 일이 없다. 정 괴로우면 잠깐 피할 뿐이다. 예전에 개도둑이 개를 훔쳐 시장에 팔았는데, 주인이 다가가자 일제히 컹컹 짖어 '장물'개를 찾아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개도둑이 팔지 않았더라도, 개주인이 며칠 뒤에 팔 개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을 상봉한 뒤 실제로 며칠 뒤에 보신탕집에 팔렸다.
개고기가 미용식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개고기와 사람의 몸이 지닌, 놀라운 공통점 때문이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가장 가까운 윤회가 개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개의 형상이 있다. 불독도 있고 똥개도 있고 스피츠도 있고 그레이하운드도 있다.
우리가 개를 즐겨먹은 까닭은, 가장 싼 육식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개는 키우지 않아도 인변(人便)을 먹고 저절로 자라나는 씩씩한 변견(便犬)들이었기에, 사람이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개를 잡았다. 우리가 개를 식육으로 쓴 까닭은, 육식을 꺼리는 불교가 국교였던 시절을 통과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소와 돼지와 닭을 먹지 않았기에 참다 참다, 빈대라도 잡아먹은 셈이다. 다산 정약용이 똑같은 신세로 귀양을 사는 정약전 형에게, 곯아죽지 말고 그곳에 돌아다니는 들개라도 잡아먹으라고 충고한 것은 그런 생활의 지혜에서였다.
육개장은 원래 개장에서 출발한다. 이 배고픈 민족이 먹는 가장 원천적인 육식이 개장(狗漿, 개고기를 고거나 갈아서 만든 미음같은 음식)이었기에, 정 안되면 개를 먹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다른 종족을 살상하는데 그게 소였다. 우린 정말 개는 먹어도 소는 눈물을 머금고 먹었던 민족이었다. 개는 농사를 못짓지만 소는 거의 농민이다. 농민이 농민을 먹는 일은, 정말 참극이었다. 하지만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으니, 소고기를 개고기인양 먹었다. 그게 육개장이다.
복날 개를 먹는 것은 사람이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개들이 기운을 못차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의 병자처럼 비실거리는 개를, 너도 여름나기 힘들지 하면서 슬그머니 잡았던 습속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개를 먹는 사람들이, 떳떳이 '개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 속에 있는 원초적인 양심과 죄책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부터 말복까지 개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 입 속에 있는 개장냄새를 개가 맡기 때문이요, 개의 눈 속에 있는 두려움과 억울함을 우리가 보기 때문일지 모른다. 개와 인간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스무 하루의 풍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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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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