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대기업의 사내유보금 활용방안을 두고 최경환 경제팀과 경제계가 대치국면에 들어선 듯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사내유보금이 적정수준을 넘어설 경우 그 초과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사내유보금을 주주배당이나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이나 임금인상에 사용되면 일부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첫 번째 안은 유보금은 원하는 대로 유지하되 그에 대한 세금을 걷어 세수부족을 채울 수 있고, 두 번째 안은 유보금의 일부를 시장에 풀어 증시부양과 가계의 소비진작을 유도해 내수를 살려보겠다는 구상이다.
최 부총리나 정부 모두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야당 주장에 펄쩍 뛰고 반대했었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은 '상황'이 달라져서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세금은 예상보다 덜 걷히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올 예산안을 달라진 여건에 맞게 다시 짜는 것)을 하자니 정부안과 국회 심의, 의결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세금 외 각종 부담금 등 세외수입이나 기금만으로 경기부양을 하기는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다.
정부로서는 사내유보금은 '매력적인 재원'이다. 사내유보금 규모는 81개 상장사의 합계만도 516조원 정도다. 정부 올해 예산(357조원)보다 많고 정부의 기금지출규모(517조원)와 맞먹는다. 금융기관과 다른 상장사, 비상장사를 포함하면 700조~800조원이다. 15% 정도가 과세된다면 올해 세수부족 예상치인 10조원 이상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자발적으로 10% 수준이 배당이나 임금인상에 투입되더라도 수조원 정도가 일시에 시장에 풀린다. 경제계는 절대반대 입장이고 학계에서는 찬반이 분분하다. 정부가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상황의 변화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증세'라는 정공법, '공약가계부'를 다시 조정하는 고해성사를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라 곳간은 비어있고 경기는 살려야겠다면 우선 조세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성장률 하향조정을 공식화했으니 세수가 줄어들 것은 뻔하다. 법인세와 소득세, 아니면 부가가치세를 올리든지(증세) 아니면 내리든지(감세) 해서 성장을 통해 세수를 늘리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아니면 공약을 수정해서 복지지출을 줄여야 한다. 129조원(2014~2017년) 규모의 공약가계부를 조금만 손보면 역시 수조원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금도 이들 3대 국세는 손대지 않고 복지도 오히려 확대하고 공약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과도한 비과세ㆍ감면을 합리적으로 재설계하고, 세원투명성 제고 등을 통해 과세기반을 넓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매년 하는 말이지만 이 역시 매년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다.
대기업의 곳간을 풀어 구휼(救恤)에 나서라는 유보금 논란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기보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 돌려막기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