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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신용등급'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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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소신 있는 평가 저해 우려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최근 신용평가회사 간에 신용등급이 불일치하는 사례가 늘면서 '유효신용등급'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부여된 2개의 신용등급 중 낮은 등급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는 유효신용등급이 신평사의 소신 있는 등급 평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회사채시장에서는 유효신용등급이라는 개념이 정설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효신용등급은 감독규정이나 법적으로 정의된 공식 용어가 아니라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일 뿐이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전략팀장은 "유효신용등급은 법률 용어도 아니고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금리를 산정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효신용등급은 과거 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의 채권시가평가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시 관련 시행세칙에서는 '채권의 기준수익률은 발행회사의 최근 신용평가등급 2개 중 최저 등급을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지금은 이 규정이 폐지됐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계속 준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규정을 따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유효신용등급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단 기준으로 높낮이뿐만 아니라 평가시점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 경우 평가를 늦게 실시한 신평사의 등급이 유효신용등급이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포스코와 대신F&I(옛 우리F&I)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기평은 지난달 11일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안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단계 낮췄다. 하지만 이틀 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고 등급전망만 '부정적'으로 내렸다. 결국 포스코의 유효신용등급은 AAA로 유지됐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한기평이 대신F&I의 신용등급을 AA-(하향 검토)에서 A+(안정적)으로 낮췄으나 이후 1~2주 간격으로 한신평과 나이스신평은 대신F&I의 기존 신용등급인 AA-를 유지했다. 역시 유효신용등급을 지킨 것이다.


이처럼 신평사들이 자사의 신용등급을 유효신용등급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다른 신평사보다 평가를 늦게 진행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전문위원은 "신평사가 자사의 신용등급을 유효신용등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신평사보다 더 늦게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시장이 신평사에게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면서도 유효신용등급의 개념은 정반대의 행태를 유도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기업이 유효신용등급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3대 신평사 중 2곳이 등급을 유지하고 1곳만 등급을 떨어뜨렸을 경우 등급을 유지한 2곳에만 평가를 의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 전문위원은 "기업 입장에서 등급을 하향 조정한 신평사에게 평가를 의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유효신용등급마저 최근 평가한 2개의 신용등급으로 결정된다면 등급을 낮춘 신평사에는 신규 평가를 의뢰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효신용등급은 시장의 암묵적인 관행일 뿐이지만 실제로 투자자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채권평가사를 비롯한 상당수의 시장참여자가 채권가격 산정 시 이를 활용하고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과거의 관행에 따를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단해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실제 일부 연기금들은 최근 2개 등급과 무관하게 3대 신평사 중 가장 낮은 신용등급을 적용하는 곳이 있다"며 "글로벌 신평사들 간에도 등급 격차가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내 유효신용등급 관행은 등급 차별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박민규 기자 yush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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