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팬택 채권단이 이동통신3사의 출자전환 결정 시한을 오는 8일까지로 유예했다. 결정 시한이 가까워오면서 이통사들의 의견이 거부 쪽으로 기울자 채권단이 최종 결정 시한을 5일 연장한 뒤 8일까지만 기다리겠다는 '최후 통보'를 한 셈이다. 팬택의 운명을 손에 쥔 이통사들은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실리' 따지는 이통사…"그래서 살아날 수 있나"= 이통사들은 당장의 매출채권 1800억원 출자전환에 대한 부담보다는 앞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한다는데 대한 거부감이 큰 상황이다. 이통사들의 출자전환 결정으로 워크아웃 상황이 지속된다 해도 이후 신규자금 확보가 힘들 경우 사업 유지가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현재 팬택 스마트폰의 재고는 60만~70만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5000억원에 달한다. 당장 출자전환에 나서도 지난 1분기 매출액(2958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재고가 쌓여있어 활발한 순환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이 전체적으로 활기를 잃은 상황에서 팬택의 브랜드와 마케팅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추가 투자 없이는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통사가 출자전환에 나서 주요 주주로 올라서게 되면 추가 출자 등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까지 사실상 팬택을 외면하면서 이통사들의 판단이 실리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고 있다. 팬택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 휴대폰 보조금 상한제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는 제도 적용의 형평성 등을 들며 예외를 두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팬택 살리기'에 대한 정부의 뜻이 확고하다면 이통사 역시 방향 결정에 더 큰 압박이 있겠지만 현재 기류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 8만명 설자리 잃어…사회적 책임, '명분'도 무시 못해= 그러나 이통사들이 팬택운명의 마지막 칼자루를 쥐게 되면서 '명분'도 무시못할 부분이다. 내부적 입장이 '출자전환 거부'로 가닥이 잡혔음에도 채권단에 최종 통보를 마지막까지 미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팬택과 협력업체 550여곳의 임직원은 8만명 가까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통사들의 1800억원 출자전환 결정에 이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셈이다. '원조벤처'격인 팬택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무너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른 사회적 책임의 화살을 마지막에 이통사가 받게 되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팬택이 힘들어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서 입고 못시켰던 물량이 많다"며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말 그대로 직원들의 생사가 걸려 있어 이통사 결정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곳만 남는 데 따른 시장 불균형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제조사 3곳이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이를 활용해 협상에 임할 수 있는 구도가 이통사들에게도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팬택과 채권단 역시 이 같은 점들을 강조하며 이통사에 대한 막판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팬택과 채권단 모두 이통사 고위 관계자를 매일 만나 설득에 나서고 있다"며 "채권단은 8일을 최종 시한으로 보고 있고, 이때까지 답변을 듣지 못할 경우 팬택은 법정관리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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