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불구경보다 더 재미나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더니, 정말 신나는 구경거리가 생겼습니다. '경영학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크리스 크리스텐슨 교수에 대해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인 질 라포어 교수가 먼저 주먹을 날렸지요. 라포어 교수는 지난 23일자 '뉴요커' 기고문에서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대해 아주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대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괴적 혁신은 지난 15년 동안 모든 혁신 이론가들이 자나깨나 외우던 주문이고, 웬만한 경영자 누구나 자신의 기업을 이 이론에 비춰 생각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포어 교수는 파괴적 혁신 개념이 아주 적은 사례에 기대어, 그것도 그 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변인들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빈약한 개념이라고 폄하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론이 안 통하는 사례들을 열거합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에 속절없이 당한 기업으로 거론했던 시게이트나 US스틸 같은 기업들이 여전히 멀쩡히 살아있고, 이른바 파괴자들에 투자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았던 펀드가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텐슨이 2007년쯤 애플이 곧 파괴당해서 망해버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는 점을 들춰냅니다. 파괴적 혁신이론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쓸모가 없다는 대표적인 예로서 말이지요. 라포어 교수가 가장 마음 불편해하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한 이론이 경영현장을 넘어 학교나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가만히 있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뉴요커 웹사이트에 기사가 실리자마자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합니다. 그는 라포어 교수의 비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상대가 학자로서의 태도를 잃고, 파괴적 혁신에 대해 충분히 공부도 안 한 채 인신 공격을 했다고 지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라포어 교수를 '질'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비즈니스위크 기자는 그래서 인터뷰 말미에 라포어 교수와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지 묻습니다. 사실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답니다.
경영현장에서 파괴적 혁신의 개념이 빠르게 수용된 것은 사람들이 혁신을 설명하는 이론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일어나는 산업계의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 기업들을 쓰러뜨리곤 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사고의 도구를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자동차산업의 거대 기업들은 앞으로 자동차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일종의 전자제품이 돼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내비게이션, 전장, 심지어 차량제어 소프트웨어를 자동차업체 대신 제3의 업체에 의지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소비자의 운전 취향에 맞춰 특별한 방식으로 엔진을 제어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파는 업체가 큰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앱의 판매는 구글이나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의 자동차를 언제든지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UX)와 기능을 갖도록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자동차업계는 매우 낮은 부가가치를 갖는 기계 생산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업계의 거인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까 밤잠 못 이루며 부심하고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매우 직관적인 사고의 도구를 제공해왔습니다. 만약 앞으로 더 진전될 학계의 논의가 '파괴적 혁신 개념을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면 경영자들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겠지요. 아뿔싸.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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