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축구대표팀은 토너먼트 자력 진출이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최종경기를 비기거나 이겨야 희망이 생긴다. 파비오 카펠로(68) 러시아 감독은 총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7일(한국시간) 러시아축구협회와 4년 연장 계약을 맺었지만 벌써부터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의 스포츠전문지 ‘스포르트 익스프레스’ 등은 연일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자국 대표팀을 향해 ‘그리스 같은 러시아는 충분해’라는 표제도 썼다. 수비 중심의 축구로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려는 선수 소집 때부터 있었다.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리그 선수로만 대표팀을 꾸렸다. 그런데 리그 득점 2위(17골) 아르툠 주바(26·로스토프)를 최종명단에서 제외했다. 공격수로 막심 카눈니코프(23·암카르 페름), 알렉산드르 코코린(23·디나모 모스크바),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32·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세 명만 데려갔다. 비탈리 무트코(56)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한다면 주바를 부르지 않은 것이 원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카펠로는 왕이 되려면 어떻게든 조별리그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승리 없으면 색깔도 없다
카펠로 감독의 전술 밑바탕에는 ‘카테나치오(catenaccio 빗장)’가 깔려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수비가 최우선이다. 이전까지 러시아는 거스 히딩크(68), 딕 아드보카트(67) 등 네덜란드 출신 사령탑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선수들은 짧은 패스 중심으로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였다. 그러나 기대를 모은 유로 2012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수비진의 잇단 실수에 발목을 잡혔다. 러시아축구협회는 보완을 위해 카펠로 감독을 데려왔다. 당시 유럽 매체들은 러시아 축구가 지루해질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에서 러시아는 화끈한 공격력을 뽐내지 못하고 있다. 두 경기에서 고작 한 골을 넣었다. 패스는 서른두 나라 가운데 여섯 번째(1012회)로 적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를 해결할 선수로 기술이 좋은 안드레이 아르샤빈(33·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알란 자고예프(24·CSKA 모스크바) 등을 꼽는다. 그러나 아르샤빈은 최종명단에서 제외됐고, 자고예프는 중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 두 경기에서 모두 후반 교체 투입됐다. 카펠로 감독은 빅토르 파이줄린(28·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데니스 글루샤코프(27·스파르타크 모스크바)처럼 빠르고 수비 가담이 좋은 선수를 중용한다. 이 때문에 4-3-3 전형을 쓰는데도 4-5-1을 사용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승이 간절한 카펠로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부터 자국 어필을 위해 스포츠를 강화했다. 그래서 메달 색깔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소련이 붕괴된 뒤에도 인식은 여전하다. 경제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민에게 스포츠를 통해 ‘강한 러시아’를 강조한다. 블라디미르 푸틴(62) 대통령은 이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개최, 사상 최다 메달(33개)을 챙겼다. 이제는 월드컵이다. 2018년 대회 개최로 다시 한 번 자국민의 애국심 고취를 노린다. 카펠로 감독은 이를 잘 알고 있다. 4년 연장 계약 당시 “내게는 큰 계획이 있다. 2018년 러시아에서 그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 카눈니코프, 파벨 모길레베츠(21·루빈 카잔) 등 A매치 경험이 거의 전무한 선수들을 데려갔다. 미래를 내다본 발탁이었다.
카펠로 감독은 선수단을 군대처럼 다루고 있다. 전원이 모여야 식사를 시작하고 운동장 밖에서 정해진 옷만 입게 한다. 자유로운 외출도 없다. 글루샤코프는 “경기에서 이기려면 엄격한 규칙이 필요하다. 이런 집단성이 경기에서 조직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부상으로 이번 월드컵에 불참한 전 주장 로만 시로코프(33·크라스노다르 모스크바)도 “아름다운 축구를 하고 실망스런 결과를 내는 것이 좋겠는가”라며 감독을 옹호했다. 오사카대학에서 러시아예술론을 가르치는 시노자키 나오야 교수는 “이탈리아 출신의 카펠로는 훈련 교관과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카리스마가 강하다. 이 때문에 스페인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충돌이 잦았다”며 “러시아 선수들은 권위와 브랜드에 약한 경향이 있다. 스파르타식 교육에 익숙하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펠로 감독은 자신에게 최적이나 다름없는 지휘봉을 절대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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