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국가보훈처가 23일 '친일사관' 논란으로 낙마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조부가 2010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문남규(文南奎)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가운데, 독립운동 활동을 입증할 공적심사위원회 조차 개최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훈처가 성급하게 밝힌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훈신청을 하고도 10년 이상 대기자 상태로 머무르는 유족ㆍ후손들이 많은 현실에서 형평성을 크게 잃었다는 비판이다.
통상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는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독립운동ㆍ근대사 연구자, 대학 교수,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적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에서 1심과 2심을 거친다. 만약 1심과 2심의 조사결과가 다르게 나올 경우에는 합동심을 열어 최종적으로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예컨대 3ㆍ1운동에 참여했다 옥고를 치렀다고 하더라도 이후 행적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행적이나 입증자료가 사라진 경우가 많아 서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신청을 하고도 10년 이상 서훈대기자 상태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독립유공자 서훈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서훈이 가지는 명예도 크지만 현실적인 혜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에 관한 예우와 법률'에 따르면 서훈에 종류 등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유족ㆍ후손들은 3대까지 장기저리 대출지원, 양로ㆍ양육 지원, 주택 우선 분양, 취업 채용시험시 5~10% 가점, 월 44만~186만원에 달하는 연금혜택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문 전 총리 후보자의 조부와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이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훈처의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서훈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위를 개최하지않았을 뿐더러, 심사위의 구체적인 검증절차도 없이 몇가지 자료만으로 성급하게 '추정' 발표했기 때문이다.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 역시 "심사위에서 공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 '동일인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며 "보훈처에 있는 실무자(연구자)들은 해당 자료를 찾아 상정을 하는 것일 뿐 최종결정은 심사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굳이 밝히려면 '총리지명자가 확인요청을 해 왔기 때문에 확인 중에 있다'라고 발표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문남규 선생은 지난 2010년 보훈처의 조사ㆍ발굴을 통해 밝혀진 인물이지만 사망지만 확인됐을 뿐 고향이나 연령, 가족 등 구체적 정보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보훈처는 지난 4년간 문 선생의 후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조부와 문 선생의 동일인물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지 단 3일 만에 성명이 한자까지 동일하며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의 사망 장소와 문 전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씨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다는 사실 등 몇 가지 주장과 근거자료만으로 '동일인물 일 것으로 추정 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민단체들은 보훈처가 추정근거로 든 4가지 사실에도 문제가 있을 뿐더러 국가기관이 성급하게 '추정' 수준의 내용을 발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민간 학자라면 '동일인물로 추정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국가기관인 보훈처에서 할 수 있는 발표는 아니라고 본다"며 "더더군다나 총리 후보자 검증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확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추정해 발표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민족문제연구소는 24일 정황상 문 선생의 순국일자는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문제를 제기했으며 후속 검증을 위해서 족보 등 사료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반면 보훈처는 일부 매체가 '동일인물 임이 확인됐다'는 보도를 했기 때문에 해명 차원에서 '사실'만 전달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이번 논란을 계기로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를 결정하는 공적심사위원회의 구성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보훈처가 지난 2012년 박선숙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보훈처는 공적심사위원 50명 중 절반에 가까운 23명을 교체했다. 당시 '밀려난' 위원들은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 주로 진보성향 학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한 역사학계 관계자는 "MB정권 때 (공적심사위에서) 실력 있다는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을 대거 밀어내고 뉴라이트 성향 학자나 비 전문가들을 포진시켰다"며 "전문연구자들이 있는 만큼 문 전 후보자의 조부 관련 문제를 함부로 처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심의가 어떻게 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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