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종섭 기자]브라질 월드컵 대 러시아전에서 골망을 흔든 것은 이근호 선수의 중거리 슛이었다. 운도 따랐다. 슛이 강력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골키퍼가 잡았다가 놓치는 바람에 공이 골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이 그토록 강조하던 세트피스는 침묵했다. 한국 대표팀에게는 4차례의 코너킥과 1차례의 간접 프리킥 등 5차례의 세트피스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를 전혀 위협하지 못했다. 한차례 외에는 슈팅도 없었다.
세트피스는 축구에서 쓰이는 신조어로서 그라운드 내에 공을 멈춰놓고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다. 네이마르, 호날두, 메시 같은 골 결정력을 갖춘 스타가 없는 우리 국가대표팀은 세트피스 연습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한국 대표팀이 세트피스를 주로 연습해 온 것에 미뤄 프리킥이나 코너킥 때마다 누가 볼을 어디로 차고, 누가 최종 슈팅을 할지, 헤딩을 할지 머릿속에 그리고 움직였겠지만 매번 이행이 되지 않은 것이다. 세트피스는 개인기가 아니라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전은 우리가 공을 들여 온 조직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접목해 보면 시스템이다. 어느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구성원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다하면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제대로 된 시스템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위기 상황도 견고하게 극복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도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시스템이 유명무실한 게 문제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총리 지명 때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 부재,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각종 현장의 안전 부재 등등. 각 상황마다 메뉴얼은 있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시각을 시장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업으로 돌려보자. 기업에서의 시스템 미작동이나 오작동은 곧 몰락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견고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장기 입원 중인 삼성이 좋은 예다. 삼성이 이 회장의 장기 공백 우려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은 그동안 체계적으로 갖춰온 경영 시스템 덕이다. 현대차, LG, SK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이를 잘 작동하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는 데는 상호 간 믿음과 반복적인 학습이 선행돼야 한다. 오너와 전문경영인 등 구성원 각자가 믿음을 바탕으로 역할을 제대로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력이 바탕이 된 세트피스, 이를 언제 어디서든 구사할 수 있는 시스템 경쟁력이야말로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국가대표팀은 물론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요소다.
한국대표팀이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두 번째 경기인 알제리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세 번째 맞붙는 벨기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다. 선수 개인의 골 결정력이 부족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돌파구는 역시 세트피스다.
세트피스의 성공은 우리 국민들에게 한 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스템 무작동 또는 오작동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우리 국민들이 오랜만에 맛보는 청량제다. 아울러 유명무실해진 시스템이 만연돼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겠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이용이 프리킥한 공을 손흥민이 헤딩으로 이근호에게 건네주고 이근호가 논스톱킥으로 골망을 가르는 멋진 세트피스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파이팅.
노종섭 산업부장 njsub@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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