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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의 가슴 속 태양, 축구와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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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의 가슴 속 태양, 축구와 함께 떠오른다 허진석 스포츠레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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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얽힌 전설은 끔찍하다. 흔히 영국을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하고, 축구는 해골을 차는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11세기의 영국은 덴마크ㆍ노르웨이ㆍ스웨덴에서 밀어닥친 바이킹에 침략당했는데, 그중 덴마크 바이킹들은 영국인들을 매우 포악하게 지배했다고 한다. 덴마크인들이 물러가자 영국인들은 덴마크인의 무덤을 파헤쳐 해골을 꺼낸 다음 발로 차고 다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고향을 특정하기 어려운 운동이다. 스위스 취리히대의 헬무트 브링커 교수는 2004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홈페이지에 실린 '축구의 발상지(The Cradle of Football)'라는 기사에서 축구의 발상지가 중국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차기'는 진나라 시황제(기원전 246~210) 때부터 시작됐으며 한나라(기원전 206~기원후 220) 때는 팀과 규칙, 경기, 경기장 등이 갖춰졌다고 한다. 이집트와 남미에도 공차기 놀이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의 <삼국유사>에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7~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한 하패스톤(Harpaston)에서 발달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인 이유는 하패스톤을 근대 스포츠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1848년에 작성된 '케임브리지 규칙'은 현대축구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5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기록된 셰필드FC의 창단을 계기로 '셰필드 규칙'이 성립했다. 1863년 10월26일에는 런던의 스포츠 클럽 열세 곳과 여러 학교 대표가 프리메이슨 테이번이라는 선술집에 모여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를 창설했다.


축구를 문화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16~17세기에 유행한 '헐링 앳 골(Hurling at Goal)'과 '헐링 오버 컨트리(Hurling over country)'에서 찾는다. 헐링 앳 골은 가까운 거리에 골을 설치하고 상대방의 골에 공을 들고 뛰어들어 점수를 내는 경기였다. 헐링 오버 컨트리는 먼 거리에 돌이나 나무 등으로 표시한 목표물을 향해 공을 들거나 차고 달리는 운동이었다. 헐링 앳 골과 헐링 오버 컨트리의 경기 공간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큰길이나 툭 트인 벌판이었다. 축구의 고향은 거리이고 광장이며, 대지(大地)인 셈이다. 대지가 낳은 축구는 영국의 각급 학교에서 성행하면서 벽 속에 갇혔고 근대화와 더불어 스타디움 안으로 사라져 갔다.


축구는 2002년 대한민국에서 광장을 되찾았다. 그해 6월의 뜨거웠던 광장과 거리 응원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4년 뒤 독일월드컵 때에는 경기가 벌어지는 열두 도시가 모두 '팬 페스트(Fan Fest)'라는 축제를 열고 광장과 거리에 대형 스크린을 내걸었다. 웃통을 벗어 제친 축구팬들이 한 손에 맥주를 든 채 6월의 태양과 경기를 함께 즐겼다. 수많은 팬들이 경기장의 입장권을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축구 자체를 즐기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올해도 거리응원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붉은악마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응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잇단 사고로 소중한 이웃을 한꺼번에 잃은 우리 사회가 광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광장은 지금 슬픔과 추모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거리와 광장과 대지이기에 앞서 인간의 가슴속에 깃든 원형(原型)임에 주목한다. 축구로 달아오르는 것은 광장과 대지가 아니라 인간, 곧 우리들이다. 월드컵의 불꽃은 우리의 가슴 속에서 이성적으로, 그러나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허진석 스포츠레저부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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