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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반상회서 수배자 손가락 살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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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한국현대사를 풍자한 작품이다. 도망 간 간첩이 설사병에 걸린 게 알려지자 전국에서 설사를 하는 이들은 간첩 의심을 받게 된다.


동네마다 누군가 설사 낌새를 보이면 의심하고 신고한다. 영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상상만은 아니다. 과거 유신정권 시절에는 '불순분자'에 대한 주민 신고 감시망이 철통 같았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70대 노인 한 명을 잡기 위해 검찰과 경찰은 물론 합동참모본부 관계자까지 모였다. 이들이 모인 12일 회의에서는 유병언의 '비밀'이 공유됐다. 유씨의 왼쪽 세번째 손가락이 휘어져 있다는 내용이다.


꽤나 의미 있는 정보라고 판단했는지 같은 날 대검찰청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도 이를 알렸다. 유병언 손가락의 비밀을 언론에 알린 이유는 국민의 제보를 독려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13일에도 새로운 정보가 알려졌다. 다시 유병언 손가락 얘기다. 검찰은 유씨 손가락의 비밀을 정정했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손가락이라는 것이다.

13일엔 '유병언 임시반상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특정 수배자 검거를 위해 임시반상회를 여는 건 처음이다. 안전행정부는 유병언 사진이 있는 수배 전단을 포함한 반상회보를 특별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다. 유병언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고는 어떻게 하는지, 신체적 특징은 무엇인지를 반상회를 통해 알리겠다는 얘기다.


물론 유씨 손가락의 비밀도 공유될 것이다. 반상회에서 "유병언의 오른쪽 세번째 손가락을 주시하라"는 얘기를 나누는 장면,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설사하는 이들을 의심하라는 장면과 무엇이 다를까.


코미디 같은 장면인데 의외로 진지한 정부와 누군가의 신체적 특징을 주시하며 정부당국에 신고하도록 요구받는 국민이 등장하는 모습, 닮아 있지 않은가.


세월호 시위대를 막는 데서 볼 수 있듯 법 질서 수호에 철통같은 방어막을 구축하는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국민들의 신고 정신에 이렇게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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