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올해 원·달러 환율의 저점은 어디일까. 5월 내내 1020원 선을 공략하던 원·달러 환율이 9일 개장과 함께 1010원대로 수직하강했다. 5월30일(1017.10원) 이후 두 번째로 등장한 1010원대 거래가이지만, '바닥'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날 개장가는 1018원. 오전 10시16분을 넘기면서는 1017.05원(전 거래일 대비 -3.45원)까지 하락폭이 확대됐다.
개장가를 누른 건 유럽발 재료다. 지난 연휴 기간 유럽중앙은행(ECB)은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열었다. ECB는 기준금리를 종전 0.25%에서 0.15%로 내리면서 초단기 수신금리인 ECB 예금금리를 0%에서 -0.10%로 낮췄다. 각종 신용확대 조치도 시행하겠다고 했다.
줄여 말하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를 주기는커녕 은행들이 관리비(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돈을 쟁여두지 말고 기업이나 개인에게 빌려주라는 채근인데, 이 결정으로 유로화 가치는 달러당 1.35유로까지 떨어졌다.
ECB의 결정은 5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증시를 일제히 끌어올렸다. 연휴 뒤 서울외환시장에서도 반응이 왔다. 지난 5일 1020원 선에 턱걸이를 하며 장을 마친 환율은 예상대로 9일 개장과 함께 1020원을 내줬다.
올해 원·달러 환율의 추이를 보면, 1월 평균(종가기준) 1065.80원이던 환율은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1018원까지 떨어졌다. 하락폭은 벌써 47.8원. 하지만, 6월 말쯤엔 종가가 1010원 선 초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게 시장의 공통된 전망이다. 1월부터 6월 사이 환율의 하락폭은 50원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외환당국은 미세조정을 통해 1020원을 간신히 사수했지만, 추세적 하향 압력을 떨쳐내기엔 역부족이다. 환율 급락세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풀어댄 달러화 유동성이지만, 4월까지 2년 넘게 이어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나 3600억달러를 넘어선 사상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5월 말 기준), 지지부진한 미국의 경기 회복세 어느 쪽을 봐도 중단기 환율을 떨어뜨릴 요인이 없다.
유로화 약세가 지속되면 통상 달러화는 강세로 돌아선다. 이 경우라면 원·달러 환율 급락세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유로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ECB의 결정에 따른 영향은 유로화 가치에 선반영돼 있고, 유럽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글로벌 자금이 국내 시장에 유입되면, 외려 원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각에선 유로화가 잠깐 약세를 보이다 이내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화 약세를 부추길 요인이다.
전승지 삼성선물연구원은 "추세적 환율 하락세 속에서 주가도 오르며 출발해지만, 결국 ECB의 결정이 '한 방'이 됐다"고 분석했다.
전 연구원은 다만 "유로화 가치에는 이미 ECB의 마이너스 금리 결정 가능성이 선반영된 부분이 있다"면서 "유로화 약세는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이번 달이나 3분기 중 원·달러 환율이 저점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 연구원이 점친 연중 환율의 저지선은 달러당 1000원이다. 해외 투자 수요와 당국의 개입 가능성을 고려하면, 연내에 세 자릿수 환율을 보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류현정 한국씨티은행 외환파생운용부 부장도 "전반적인 달러화 약세 속에서 ECB의 결정이 환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면서 "최근 환율의 월평균 하락폭을 보면, 6월 중 간신히 1010원을 사수하는 수준에서 상반기 거래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점쳤다. 국제금융센터도 유로화의 방향에 대해 시장과 같은 의견을 냈다. 센터는 "유로화가 당분간 약세를 보이겠지만, 하락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기관과 시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유로화 가치가 어떻든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 외환 당국이 마지노선으로 보는 1000원 선 아래로까지 환율이 떨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가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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