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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박지성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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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박지성이 최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글쓴이도 이에 동감한다. 스포츠 기자 생활을 하면서 꿈은 이뤄진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니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스포츠 팬들은 1984년 사라예보 대회와 1988년 캘거리 대회 2연속 올림픽 챔피언 카타리나 비트와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옥사나 바이울 같은 ‘빙판 위의 요정’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고 지레 마음먹었다.
“우리는 언제나 저런 선수를 응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스포츠 팬들은 2010년 2월 26일 밴쿠버 퍼시픽 콜로세움 링크에서 꿈이 아닌 현실과 마주했다.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는 결코 꿈 속의 요정이 아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금메달리스트 박태환도,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도 꿈을 현실로 바꿨다.
그런데 박지성의 꿈에 글쓴이는 전제 하나를 달고 싶다. ‘여자가 먼저 월드컵을 들어 올린 다음, 남자도 들어 올리자고’
일본은 2011년 독일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이웃 나라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는 얘기다. 일본 여자 축구는 196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했고 1980년 제 1회 일왕배전일본여자축구선수권 대회를 개최됐다. 제 2회 대회까지는 정규 규격보다 작은 54m×76m 구장에서 8인제로 전·후반 25분 경기를 했다. 한마디로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1983년 제 3회 대회 때 11인제가 됐고 1984년 제 4회 대회 때는 경기 시간이 전·후반 30분씩 60분이 됐다. 이후 라운드별로 경기 시간을 달리하다 2010년 제 32회 대회부터 모든 경기가 전·후반 45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부터 12월 23일까지 열린 제 35회 대회에는 36개팀이 출전해 자웅을 겨뤘다. 30여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여자 축구 발전사와 겹치는 내용이 있다. 1990년 제 11회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여자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일이다. 이때 한국은 개최국 중국의 요청으로 다른 종목 출신 선수들로 대표팀을 급조해 출전했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걸음마는커녕 기지도 못하고 있던 한국을 8-1로 눌렀으나 북한과 1-1로 비기고 중국에 0-5로 지는 등 3승1무1패로 중국(5승)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중국은 이 무렵 여자 축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자국에서 연 1991년 제 1회 여자 월드컵에선 8강에 만족했지만 1995년 제 2회 대회(스웨덴) 4위에 이어 1999년 제 3회 대회(미국)에서 준우승했다. 결승에서 미국과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5로 졌다. 미국의 미아 햄과 중국의 쑨원은 1990년대 후반 세계 여자 축구 최고의 스타였다.
중국의 바통을 이어받은 나라가 일본이다. 1989년 6개 구단으로 일본여자사커리그(JLSL)를 출범한 일본은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여자 축구 열기가 불붙어 1991년 10개 구단으로 확대했고 1992년에는 하부 리그인 JLSL 챌린지리그가 꾸려졌다. 올해 현재 1부 리그 10개 구단, 2부 리그 16개 구단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FA컵 격인 일왕배대회에는 이들 JLSL 구단과 일본축구협회에 등록한 중학생 이상 선수들로 구성된 클럽, 그리고 고교, 대학 팀들이 출전한다.
이런 시스템을 발판으로 일본 여자 축구는 2010년 제 2회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준우승(한국 우승)과 2014년 제 4회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2012년 제 6회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3위(한국 2010년 제 5회 대회 3위) 등 연령대별 대회에서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1년 독일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미국과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1로 이겨 정상에 올랐다. 국제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볼 때 중국보다 한 발 늦었지만 먼저 세계 무대를 평정한 것이다.
한국은 여자 축구 역사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1940년대 후반 김화집 선생이 주창해 여자 축구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1949년 6월 서울운동장(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옛 이름)에서 전국여자체육대회의 한 종목으로 여자 축구를 실시해 서울에 있는 중앙여중과 명성여중 무학여중이 출전한 가운데 무학여중이 우승했다. 가슴으로 날아오는 공을 손으로 막아도 핸드볼로 간주하지 않는 등 특별한 규칙이 적용된 경기였지만 한국 여자 축구사의 분명한 시발점이다.
한국은 내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제 7회 여자 월드컵에 2003년 대회 이후 12년 만에 통산 두 번째 출전한다. 일본이 이뤘고 중국이 문턱까지 갔던 세계 여자 축구 정상에 한국이라고 서지 못할 까닭이 없다. 박은선과 지소연이 쑨원만큼 이름을 날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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