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최근 국가기록원이 '세월호 사고 관련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관련 부처와 자치단체에 발송한 것을 두고 정부가 세월호 관련 기억을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추모기록 보존을 맡는다면 국민의 더 큰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가기록원은 지난달 30일 '여객선 세월호 사고 관련 기록물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해당기관별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발생·대응·수습 등 업무 전 과정에서 생산·관리되는 기록물 관리에 철저를 기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안행부, 해수부, 해경 등 관련 부처, 전국 광역시도 지자체 및 교육청, 안산시 및 진도군에 발송해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이 공문에는 발생·수습·대응에 만들어진 각종 문서 및 시청각자료, 전자기록물, 영상촬영기록, 분향소 메모 등 모든 기록이 관리대상에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관련 기록물 보존은 시민 주도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김익한 교수(55)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무책임, 무능이 이번 사고를 만들었다. 정부에게 추모 기록을 맡기는 것은 마치 국정원에게 국정원 개혁을 맡기는 것과 같다. 정부는 추모 기록 보존에서 손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주도의 세월호 기록 보존은 (기록 훼손이나 폐기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기억을 통제하고 가두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추모 기록에 대해 정부와 시민, 두 움직임이 있다. 정부가 추모 기억을 가두려고 한다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과 충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간기록전문가들에 의한 세월호 기록 수집·보존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기록학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정보공개센터, 인간과기억아카이브, 명지대ㆍ한국외대ㆍ한남대ㆍ한신대 기록학과 등이 구성한 ‘세월호 사고 추모 기록보존 자원봉사단’은 지난 13일부터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 합동분향소 등에서 관련 자료, 사진, 동영상을 기증받고 자원봉사자와 경찰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 교수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사고가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며 "기록한다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의 진상과 사건의 고통,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성찰을 시대가 영구히 기억하도록 하는 것을 '사회적 기억'이라고 한다. 세월호 사고를 사회적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는 국가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기록물 보존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록물 보존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시민참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또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은 만큼 진상규명과정에서도 시민 참여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번 사고의 책임당사자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 시민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기록이 선별되지 않고 모두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중에는 서울시가 세월호 추모기록물 보존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영삼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장은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시는 관련 기록을 일방적으로 수집해 박스에 넣어두지 않고 기록수집에 시민 참여를 유도하며 시민 주도로 진행되는 기록수집과정에도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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