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개성공단은 화해의 장인가, 빌미를 제공해준 수단일 뿐인가.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현대와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체결한 '7대 남북경협사업 합의서'에 따라 시작됐으나 악화일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지난해부터 잠정폐쇄라는 최악의 경영난을 겪더니 남북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때면 개성공단 우리 인력들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개성공단의 첫삽은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1999년 10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건설 등을 협의한 뒤 북한의 김용순 아태평화 위원장과 공단건설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이 첫 시점이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9일 정몽헌 현대 회장에게 개성을 공단후보지로 전격 제안했고, 13일 만인 2000년 8월 22일 현대는 북한 아태평화위 등과 개성, 강원도 통천, 신의주 등 3곳에 공단을 건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7대 남북경협사업 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현대는 1998년 시작한 금강산관광에서 수익을 내지 못해 공단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2000년 11월 당시 한국토지공사(토공)와 '1단계 개발 공동사업 시행 협약'을 맺어 정부의 지원을 끌어냈다. 하지만 2001년 3월 21일 정주영 회장이 별세하자 개성공단 조성 사업의 주도권은 사실상 정부로 넘어갔다.
현대와 토지공사는 2004년 4월 공단 부지 조성 공사를 시작한 뒤 시범단지(9만3000㎡)에 대한 분양을 시작했다. 시범단지에는 봉제, 신발, 전자부품 등 4개 업종 15개 기업이 입주해 2004년 12월15일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돼 대부분의 남북 경협 사업이 중단됐지만 개성공단 사업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됐다.
2007년 65개에 불과했던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2008년 93개, 2009년 117개, 2010년 121개, 2011년 123개로 늘어났다. 2014년 5월현재 업체 2곳(신영제어기·협진카바링)이 개성공단에 입주해 입주기업은 125개로 늘어났다.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도 2007년 2만명을 조금 넘던 수준에서 2009년 4만명, 2012년 5만명 선을 넘어섰다. 연도별 생산액 역시 2007년 1억8천478만 달러에서 2012년 4억6950만 달러까지 매년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해 3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뒤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로 사용하던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으며, 한달뒤 남한 근로자의 개성공단 진입을 차단하고 귀환만 허용했다.
이어 지난 8일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개성공단을 둘러본 뒤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하고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이튿날 북한 근로자 5만3000여명이 출근하지 않아 사실상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정부도 4월 26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에 잔류한 우리 국민 전원 귀환 결정을 발표했고, 다음날인 27일 1차로 126명이 돌아온 데 이어 29일 43명이 귀환했다. 이로써 개성공단에는 미수금 처리 문제로 홍양호 위원장을 포함한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 5명과 통신을 담당하는 KT직원 2명만이 남아 사실상 텅빈 상태가 됐다.
이 고비를 넘기고 한해가 지났지만 북한은 아직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된 대화에도 소극적 자세로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또는 산하 분과위원회 회의를 열어 현재 시험가동 중인 전자출입체계(RFID) 조기 전면가동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북측의 호응이 없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분기에 한 번 개최하는 것이 원칙인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19일 개최된 뒤 4개월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관련된 남북대화에까지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지난 2월 이후 정체 국면을 맞은 전반적인 남북관계 분위기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올리지 못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우리측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에 불만을 품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중앙특구지도총국은 매년 5% 올리던 북측 근로자 임금을 올해의 경우 작년 미인상분을 더해 10% 올라자고 우리측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 상황이 여러 가지로 유동적인 가운데 북한이 이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까지 상황을 관망하면서 개성공단 문제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의 우리측 인력보호차원에서 군사적인 대비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군당국은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개성공단 인력구출작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전문가들은 남북관계가 냉각돌 경우 '북한의 남측재산 동결.몰수→남측의 단수.단전→북측의 군부대 전진배치'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이 서로 압박카드를 제시할 경우 군사적인 움직임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가 장기화하면 북한이 대남 압박 차원에서 군부대를 개성공단 인근 지역으로 전진배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군사적인 대치상황이 올 경우 개성공단를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때문에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부대를 전력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03년 12월 개성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다. 6사단에는 북한군 주력 '천마호' 전차와 장갑차 대대가 있고, 62포병여단은 수도권을 겨냥한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로 무장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개성공단 체류인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군부대를 전진배치할 경우 우리정부는 인질극으로 간주할 수 도 있다. 북한은 행동조치 경고를 통해 북남관계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선포한 적도 있다.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은 전시에 적국의 자산동결은 물론 적국인원을 억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북한이 개성공단내 남측근로자를 상대로 한 인질극사태를 벌일 경우 남북간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테러진압은 상황별에 따라 구출시나리오가 틀려지지만 크게 인질억류지역 통로개척, 협상단계, 협상 실패시 인질납치범제압 3단계로 구분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처럼 인질이 많을 경우 대규모 군사작전이 불가피하고 결국 전면전에 치닫는다는 판단이다.
군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중통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제공권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공화기부대타격은 물론 전투기기지 타격까지 감행해야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인근 북한군의 대규모 개입을 막기 위해 미군의 A-10 대지(對地) 공격기와 AH-64 '아파치' 공격용 헬기 등이 출동한다. 최종적으로 인질 수송을 위해 MH-60 특수 작전용 헬기 등을 동원한다는 시나리오다.
정부관계자는 "군부대 재배치는 공단 폐쇄를 전제로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쉽게 마지막카드를 제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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