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1호 전산학 박사 문송천 "주민등록번호제도 개선 시급하다"
개인정보 전세계 온라인 떠돌아다녀도 모르쇠
[아시아경제 권용민 기자] "결국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해커와 공모하고 있는 꼴이다."
국내 1호 전삭학 박사(1984년ㆍ미국 일리노이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대뜸 이같이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 시대에 주민등록번호제도는 '21세기 국운이 걸린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가 해킹을 당하는 규모는 미국의 4배, 중국의 10배에 달한다"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바꾸기만 해도 해커들이 지금처럼 신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한번 발급받으면 외부로 유출ㆍ도용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주민등록번호를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주민등록번호는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무책임 주의"라면서 "해커들의 온상으로 전락해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발가벗겨지는데도 정부는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주민등록번호를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국민을 관리하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국민들에게는 이미 주민등록번호가 유명무실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주민등록번호는 이미 온라인에서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ㆍ나이ㆍ성별 등이 제공되는 사이트가 등장하고 세계 주요 포털에는 '한국의 성인 주민등록번호 얻는 법', '다양하게 쓸 수 있는 한국 주민등록번호 제공' 등의 정보를 5분 이내에 찾을 수 있다.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친절하게 나열된 리스트 파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문 교수는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롤 모델로 영국을 꼽았다. 영국은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하려다가 인권침해 등 여론의 반대로 포기했다. 대신 30자리로 구성된 세대번호를 사용한다. 이 식별번호는 우리나라와 달리 국민 개개인이 외우거나 소지하지 않고 경찰이 범인을 잡거나 수사할 때 주로 사용한다. 사기업에서는 접근 권한 자체가 없다. 문 교수는 "주민등록번호를 은행이나 기업들이 수집하도록 허용한 것부터가 잘못됐다"면서 "상대가 사기업이나 개인이 아닌, 경찰이라면 함부로 해킹하려 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주민등록번호를 폐지할 수 없다면 여권이나 휴대폰처럼 번호를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개인정보를 빼내는 것도, 그 정보가 비싸게 거래되는 것도 일생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번호를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정보유출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그만큼 경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끝으로 그는 "데이터에 성역은 없다. 정부는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 전문가를 등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용민 기자 festy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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