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시간이 갈수록 인재(人災)임이 드러나고 있다. 어제 공개된 진도교통관제센터와 세월호의 교신 내용은 우리 귀를 의심케 한다. 절체절명의 31분 동안 허둥대며 교신만 했지 승객 탈출과 구조 등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실질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배는 침몰했고 선장 등 선박직 15명은 전원 탈출한 반면 승객 안내를 맡은 승무원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은 승객 대다수는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고 당일 세월호가 멀리 떨어진 제주관제센터와 먼저 교신한 뒤 11분이 지나서야 진도관제센터와 연락이 이뤄졌다니 그동안 두 관제센터는 뭘 했나. 더구나 해양경찰청은 제주관제센터와의 교신 내용만 있지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은 없었다고 발뺌해왔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침몰 원인은 물론 선장과 해난 당국의 승객 피난 조치가 왜 제때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밝혀내야 한다.
구조 현장의 난맥상은 더욱 실망스럽다. 그저께부터 오징어잡이 채낚기 어선들이 동원돼 사고현장을 밝히고 있다. 대형 바지선이 출동해 잠수부들의 구조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특수 제작된 손도끼로 선실 유리창을 깨뜨려 실종자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지지부진하던 실종자 구조 작업에 변화를 준 이런 조치는 모두 민간인 잠수부나 실종자 가족들이 낸 아이디어를 정부가 뒤늦게 받아들인 것들이다.
오죽하면 실종자 가족들이 대국민 호소문에 이어 청와대로 가겠다고 나섰을까. 어제 가족 대표들을 만난 정홍원 총리는 오늘부터 구조인력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장관급 이상이 참여하는 대책회의도 매일 열기로 했다. 정부 대응이 우왕좌왕에 너무 느려 속이 터질 지경이다. 이 와중에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들킨 고위 공직자까지 등장했다. 정부는 일사분란한 현장 지휘체계로 구조작업에 속도를 높임으로써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을 안심시키라.
온 나라가 충격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국민적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끊이지 않고, 진도 어민들은 생업인 꽃게잡이도 중단한 채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 정부도, 민간도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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