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적 대기업들의 유보율이 평균 1500%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시장ㆍ상장회사 정보 서비스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12월 결산 대기업 70곳의 유보율은 지난해 말 현재 평균 1578%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말 1414%에 비하면 164%포인트 높아졌다. 유보율은 기업이 사내에 유보한 이익잉여금의 누적액을 자본금으로 나눠 구하는 재무지표다. 유보율 상승은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여력 축적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만큼 투자와 배당에 소극적인 것이므로 기업의 성장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경제 전체의 내수 기반을 저해한다.
10대 그룹 대기업이라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기업들이다. 그들이 번 돈을 투자하기보다 쌓아두는 데 치중해서는 성장잠재력이 회복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단기적인 게 아니라 15년 이상 계속된 추세다. 대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영보수화의 길을 걸어왔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기업가정신은 위축되고, 대신 미래의 불확실성을 걱정해 돈을 움켜쥐고 웅크리는 수전노정신이 강화됐다. 유보율 상승 추세가 이를 웅변한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은 2004년 600%, 2009년 1000%를 넘었고, 그 뒤에도 빠른 속도로 상승해왔다.
적정한 유보율이 어느 수준인지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업종별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본금의 15배도 넘은 현재 대기업들의 유보율은 분명 비상식적이다. 10대 그룹 대기업들은 필요하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자금차입을 할 수도 있고, 증시 등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조달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이 사내 이익유보를 과다하게 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그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소유주의 경영 지배력이 강력한 기업일수록 이익유보를 더 많이 하는 일반적인 경향도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투자 확대를 요구하곤 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제는 과다한 이익유보에 대해 세금부과 등 디스인센티브(역유인)를 도입해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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