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재능기부로 녹음도서 만드는 서울여대 최상하·최진아·장은선씨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다고 하니 쑥스럽다. 처음에는 실수도 잦아서 한 페이지를 녹음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지금은 한 시간에 5~10페이지를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여대 최상하(20·여)씨는 요즘 교내 도서관에 마련된 도서 녹음 부스를 자주 찾는다. 이곳에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듣는 책'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서 목소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녹음하고 있는 그는 "책을 읽을 수 없는 분들이 저로 인해 책 속의 새로운 세계로 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고 더 신경 써서 꼼꼼히 읽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시각장애인들이 어학과 건강,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찾으면서 40~50대가 주를 이루는 복지관 자원봉사자보다 관련 지식을 갖춘 '젊은 목소리'가 필요해졌다. 기존 점자 도서는 부피가 큰 데다 시간이 흐르면 점자가 눌려 못 쓰게 되지만 녹음 도서는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시각장애인들은 녹음된 책을 복지관 홈페이지와 자동응답전화(ARS), 휴대전화 앱 등에서 '볼' 수 있다. 녹음 도서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수는 하루 평균 8000여명에 달한다.
이에 서울여대는 지난해 10월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교육부에서 예산 4000만원을 지원받아 녹음부스 3개와 시설을 갖췄다. 이곳에서 9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듣는 책'을 녹음하고 있다.
서울여대와 복지관은 지난 2월 '오디션'을 거쳐 학생 자원봉사자를 선발했다. 학생들의 목소리 특징에 따라 녹음할 책을 배분했다. 전혜정 서울여대 총장도 봉사에 참여해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을 매주 녹음하고 있다.
간단해 보이는 도서 녹음 작업은 목소리의 억양, 속도, 호흡 등을 조절하는 세밀함이 필요하다. 이 학교 기독교학과 대학원생 최진아(25·여)씨는 낭랑한 목소리를 뽐내다가도 중요한 구절에서는 한껏 힘을 주어 강조하고, 독일의 생화학학자 오토 마르부르크 박사의 말을 인용할 때에는 중년 남성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기도 했다. 최진아씨는 "일주일에 한 번 녹음 부스를 찾아 진도표에 따라 한 번에 10~15 페이지를 녹음한다"며 "수업 시간에 쫓겨 바쁘지만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에세이집 '온기 : 마음이 머무는'을 녹음하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장은선(25·여)씨는 "봉사 활동은 보통 정해진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야 하지만 녹음 봉사는 혼자 하는 자신과의 약속"이라며 "자신을 다독여야 하는 점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녹음 작업은 통상 4~5개월이 걸리는데 교내에 녹음부스가 마련된 이후 35권의 녹음 작업을 진행해 현재까지 3권의 녹음을 마쳤다"며 "1기에 미처 신청하지 못했거나 교육을 받았지만 녹음에 참여하지 못했던 재학생들과 직원, 교수들의 요청이 쇄도해 4월말까지 2기 녹음 봉사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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