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 전통적으로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일자리를 청·장년층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정규직 일자리에서 밀려난 어른들이 청소년을 밀어내고 청소년들은 더 기피업종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일자리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5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A편의점은 40대 점장, 부점장과 각각 36살, 26살 취업준비생들이 교대해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영등포에서 6년 이상 편의점을 운영하다 관두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36살 임모씨는 "요즘 '백수'가 많아서 굳이 청소년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며 "옛날에야 시급을 싸게 쓸 수 있으니 청소년을 썼지만 최저임금제가 엄격히 시행되고부터는 같은 돈이면 일 잘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을 쓰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편의점이나 주유소 등의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는 성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구조조정과 청년실업으로 일자리 부족현상이 심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풀이된다. 편의점업계에서 일하는 박모씨(40)는 "최근 몇 년 사이 성인남자와 주부들이 일을 구하러오는 일이 많아졌다"며 "대리운전 수익이 안나서 시급이 높은 야간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아저씨, 남편이 직장을 잃어서 일자리를 구하러 나온 주부 등 제각각 사정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야간시간대는 주로 손님이 없어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하기를 원하는 취업준비생들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중구 태평로의 한 패스트푸드점에는 '사원대모집 주부/초보환영'이라는 채용공고가 붙어있었다. 이 곳 점장은 "아이들을 키워놓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주부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채용공고에 나이제한을 써놓진 않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청소년보다는 일을 꼼꼼히 하는 주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의 아르바이트생 10명 중 4명이 주부, 5명이 20대, 고등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어른들에 의해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은 배달대행, 삐에로노동(홍보이벤트),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팅 등 더 열악하고 위험한 일자리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들 일자리 대부분은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특수고용 형태이며 초저임금에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17살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현재 수개월째 텔레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이모양(19)은 "감정노동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해본 일 중에 그나마 시급이 높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익인권법재단 윤지영 변호사는 "좋은 일자리가 없는 청·장년층에게 편의점, 주유소 등은 그나마 직접고용 형태로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으로 전체 노동시장이 열악해지면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청소년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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