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추신수(32·텍사스 레인저스)의 올 시즌 출발이 좋다. 지난 1일(한국시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열두 경기에 모두 출전해 14일 현재 타율 0.302(43타수 13안타), 3타점 6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선두 타자 몫을 톡톡히 했다. 볼넷은 열 개나 골랐고, 출루율은 무려 0.436이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볼넷 6위, 출루율 15위다. 일곱 경기에서 두 차례 이상, 세 경기에선 네 번을 출루하는 등 1번 타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출루율이란 타자가 얼마나 많이 살아나갔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로, 산출 공식은 '(안타+사구+볼넷)÷(타수+사구+볼넷+희생플라이)'다.
추신수는 지난해에도 출루율이 높았다. 0.423를 기록해 전체 4위(내셔널리그 2위)에 올랐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뒤 지난해까지 열세 시즌 동안 통산타율 0.319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41ㆍ뉴욕 양키스)도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 시즌은 2004년(0.414) 뿐이다.
추신수가 높은 출루율을 유지하는 비결은 선구안과 참을성에 있다. 타석에 섰을 때 안타를 쳐서 나가고 싶은 욕구를 잘 다스린다. 지난해 신시내티 레즈에서는 타석당 공을 4.22개 보아 전체 8위(내셔널리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볼넷도 112개로 당시 팀 동료였던 조이 보토(31·118개) 다음으로 많이 기록했다. 보토가 메이저리그 1위, 추신수가 2위였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종류와 방향을 알아채는 능력도 남다르다. 지난 3일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9회말 끝내기볼넷을 골라낸 장면이 좋은 예다. 추신수는 3-3으로 맞선 가운데 맞은 다섯 번째 타석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다. 볼카운트 2-2에서 상대 투수 조나단 파벨본(34)이 던진 떨어지는 변화구를 골라냄으로써 수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추신수도 "2볼 2스트라이크에서 절묘하게 꺾인 변화구를 골라낸 것이 상대 투수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달라지는 타격자세도 주목된다. 추신수는 붙박이 1번으로 출전한 지난 시즌부터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배트를 조금 더 짧게 쥐고, 두 다리를 게 벌려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인다. 공을 좀 더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기 위한 노력이다.
그는 또 자동으로 공을 던져주는 기계에 색깔이 다른 테니스공을 넣어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분간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훈련을 한다.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서다. 송재우(48)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공을 골라내는 타고난 능력에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이 더해져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이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미트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0.3~0.5초. 이 공을 보고 타자의 뇌에서 타격 여부를 결정하는 시간은 0.16초다. 송 위원은 "방망이를 낼지 여부가 뇌에서 판단이 이뤄진 뒤 0.15~0.35초 사이에 결정되는데 추신수는 이 때 요구되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좋다"고 했다.
텍사스와 장기 계약을 한 뒤 팀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지고 심리적으로 안정됐다는 평가도 있다. 추신수는 지난해 12월 21일 텍사스로부터 7년간 1억3000만달러(약 1353억원)를 받기로 계약했다. 지난해 신시내티에서는 1년 계약에 737만5000달러(약 77억원)를 받고 뛰었다. 특히 텍사스는 2010년과 2011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강팀이다. 추신수가 의욕을 갖고 훈련과 경기를 할 만한 조건을 갖췄다.
추신수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최초로 '20홈런 20도루 100볼넷 100득점' 이상을 달성했다. 아직까지 홈런 없이 도루 한 개만 기록하고 있지만 몰아치기를 잘하는데다 감독도 공격적인 주루를 주문하고 있어 도루나 득점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송재우 위원은 "추신수는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는 반열에 오른 선수"라며 "부상과 같은 최악의 사태만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타석이나 누상에서 보여줄 역할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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