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우크라이나 주민 투표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또 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 반도를 병합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이는 곧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협약'의 용도폐기를 의미한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 해체 과정에서 소련의 핵무기를 물려 받았다. 부다페스트 협약이란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의 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기는 대신 미국·러시아·영국·독일 등 핵보유국들로부터 독립과 주권을 보장 받은 협약이다. 크림 반도 사태가 터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다페스트 협약을 근거로 러시아에 철군을, 또 미국과 유럽에 주권 보호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계속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개입 의지는 약해 보인다.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부다페스트 협약을 언급하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 개입할 수 없는 여섯 가지 이유를 최근 소개했다.
첫째, 러시아가 미국을 파괴할 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즉 세계 최강 군사대국인 미국도 건드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러시아의 군사력도 막강하다. 자칫 양 측의 군사충돌은 돌이킬 수 없는 모두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크림 반도가 러시아 안보에 꼭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이다. 동토의 땅 러시아에 크림 반도에 있는 부동항 세바스토폴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함대 기지가 있다. 러시아가 사력을 다해 크림 반도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점은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러시아는 히틀러와 나폴레옹을 크림 반도에서 격퇴한 역사도 갖고 있다.
셋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크림 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지 않아 유럽의 적극 개입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특히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는 굳이 군사력이 아닌 에너지 무기만으로도 유럽을 압박할 수 있다. 유럽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동맹국 미국의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다.
넷째, 반면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미국에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유럽 동맹국들의 군사시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지리적 약점에 유럽의 도움마저 빈약하다면 미국의 전쟁 수행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섯 번째로 크림 자치공화국의 역사적·정치적 배경도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크림 자치공화국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지만 지난 수 백년 동안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다. 크림 자치공화국 사람들도 러시아계다. 이들은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진 후 진주한 러시아 군대를 자국 군대처럼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승리도 장담하기 힘든 싸움에 또 환영받지도 못할 싸움에 군대를 투입할 지 의문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부 문제도 있다. 미국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선거 전 전쟁을 정치인들이 좋아할 리 없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는 전쟁 수행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별로 얻을 것도 없는 전쟁에 개입하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최근 CNN 여론조사에서도 75%이 미국인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 군사행동에 반대하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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