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기 흔들며 트랙 돌아…여친 우나리와 부친은 객석서 오열
8년전 금3 동1의 신화 주인공…무릎부상,연맹 갈등, 소속사 해체로 귀화선택
[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15일 저녁 9시40분(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 한국선수가 러시아 국기를 휘날리며 트랙을 달렸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러시아 홈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계하던 한국의 방송 관계자와 해설자들은 순간 말을 잊었다. 2014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은 국내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국민들의 마음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29, 안현수)이 새 조국에 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안긴 장면은 허탈감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기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박수는 쳤지만 가슴이 아파오는 희한한 순간이었다.
빅토르 안은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가 관객석으로 달려가 기쁨을 나눴다. 몹시 감정이 북받친 듯 얼음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들썩이는 어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로서도 감격과 착잡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객석에 있던 안현수의 여자친구인 우나리씨도 눈물 가득한 웃음을 보냈고 아버지 안기원씨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간 졸였던 마음이 그제야 펴진 표정이다. 빅토르 안은 2006년 대한민국 선수 안현수로 토리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무려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의 쾌거였다. 그 자신으로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8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날이었다.
박근혜대통령까지 관심을 표명했던 그의 귀화 과정은 이랬다. 안현수는 8년전 토리노올림픽에서 남자 1000m와 1500m, 5000m 계주를 제패했고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한국 쇼트트랙의 최고 간판이 된다. 당시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올림픽 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년 뒤인 2008년 심각한 무릎부상이 발견됐다. 이후 경기 연승 행진에 제동이 걸렸고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는 출전도 못했다. 그런 가운데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소속팀까지 해체되는 악재를 만났다. 선수생활을 접어야할 만큼 비상한 위기였다. 안현수는 그런 상태로 빙판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얼음판에서 죽더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 고심참담 끝에 선택한 것은 귀화였다. 주변의 비난과 우려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올림픽 황제로 다시 부활하고 싶었다. 소치올림픽에서 8년전의 안현수가 아니라 러시아 귀화선수 빅토르 안은 이전의 동지였던 한국선수들과 경쟁을 벌였다. 1500m에서 그는 이미 동메달을 따내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다. 이날 한국 쇼트트랙 남자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1000m 결승에 오른 신다운은 실격 처리되는 불운을 겪었다.
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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