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자체 파산제 올해 안 도입 방침...공공서비스 축소·세금 인상 등 후폭풍으로 '유령도시'된 일본 유바리시 전례 있어...정부 "사전 예방 조치, 걱정할 것 없다" 일축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남의 일'만 같았던 지방자치단체 파산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 14일 지자체 파산제를 올해 안에 법제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과도한 낭비ㆍ방만 운용으로 재정이 부실해진 지자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인데,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강원도 태백시, 경기도 용인시 등 재정이 부실하기로 소문난 곳의 주민들은 혹시라도 내가 사는 곳의 지자체가 파산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몰라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외국의 예로 볼 때 지자체 파산은 공공 행정 서비스와 복지의 축소, 공공 요금과 세금의 인상, 공무원 감원 등으로 이어져 주민들은 살 길을 찾아 이주를 택하게 되고, 해당 지역이 사실상 '유령 도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 내륙에 위치한 유바리市가 대표적 사례다. 유바리市는 1970년대 최대 석탄 생산지로 한때 인구가 12만명에 달할 정도로 번영했다. 하지만 현재는 1만명 안팎으로 일본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적은 '유령의 도시'로 전락했다. 위기는 1980년대 일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유 위주로 바뀌면서 시작됐다. 광산이 폐쇄됐고, 이후 관광개발에 주력했다. 테마파크, 로봇 박물관 등이 조성됐다. 그러나 인기를 끌지 못했고, 새 관광시설 개발하느라 커다란 빚을 진 나머지 지난 2006년 '재정 재건 단체'(파산)로 지정됐다. 24년간이나 시장직을 역임한 나카다 시장의 잘못이 컸다.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적자를 메우는 등 분식회계를 저지르면서 시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파산 당시 630억엔(약8600억원)의 누적 적자는 시 전체 1년 예산의 24배나 됐다.
파산의 후폭풍은 그대로 시민들의 삶의 질 저하로 연결됐다.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2배로 늘리고 복지 혜택을 줄였다. 공무원들의 숫자ㆍ임금도 절반으로 축소했다. 버스요금의 인상, 시립병원 축소, 공립학교 통폐합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심지어 소방본부에서 운영하던 구급차 숫자까지 반으로 줄었다. 보육료, 주민세, 자동차세, 하수도 요금 등 모든 공공요금이 두 배로 올랐다. 시민들은 살 길을 찾아 이주를 택했고, 도시의 거리는 유령이 나올 만큼 을씨년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유사한 사례는 우리나리에도 있다. 강원도 태백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80년대까지 석탄 생산의 중심지였던 태백시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로 광산이 폐쇄되자 수천억원을 투입해 관광시설 개발에 주력했다가 실패했다. 매년 시 예산의 1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면서 지역 경기가 침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함께 경기도 용인시(호화청사와 경전철), 인천시(월미은하레일·경제자유구역 개발 실패) 등도 과시성 행사나 호화청사 건립, 수익성을 고려치 않은 공공사업 등 방만한 운영으로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어 재정 부실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계획대로 지자체 파산제도가 도입되고 이들 재정 부실 지자체 중의 하나가 실제 파산될 경우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일본 유바리시의 경우처럼 삶의 질 저하로 직결돼 유령 도시로 전락할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파산제도는 일본의 경우와 달리 재정 부실의 심화를 미리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세금 인상ㆍ공공서비스 축소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지자체 파산제도는 공공서비스 축소ㆍ세금 인상 등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위기가 심화되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이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라며 "설사 지자체가 파산되더라도 주민들에 대한 기존 공공서비스는 그대로 제공되고 세금이 올라가는 일도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행부는 이와 함께 '파산'이라는 용어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지자체 파산제도의 '파산'은 현재 법인의 해산ㆍ청산 활동을 의미하는 기업의 파산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는 없어질 수 없는 공공기관으로서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용어도 다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과 미국도 파산이 아니라 각각 재정재건 단체, 채무 조정 계획 승인 지자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파산이라는 용어는 청산ㆍ폐쇄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돼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는 점도 다른 대안을 검토하는 이유다.
안행부 관계자는 "언론이나 학계 등에서 지자체 파산제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이번 발표에선 파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뿐"이라며 "파산은 지자체라는 공공기관이 법적인 정식 용어로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다른 이름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파산 선고를 받은 지자체들은 어떤 식으로든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여전히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공공서비스 축소나 세금 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파산 선고 자체가 지역 이미지를 훼손시켜 가뜩이나 안 좋은 지역 경기가 치명타를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지자체들이 재정 자율권을 갖고 있지 못해 파산제라는 것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면서도 "그래도 파산 선고돼 구조조정에 들어갈 경우 지역 전체의 슬럼화가 우려되고 이미지 훼손 등으로 주민들은 너도 나도 이사를 가려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편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 파산제도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일단 일정한 기준 이상의 부채를 갖게 되는 지자체를 '파산' 선고한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정부나 상급단체가 재정 운용에 직접 관여하는 등 재정 자치권이 박탈된다. 파산 선고의 기준으로는 예산대비채무비율, 통합재정수지적자비율, 채무상환비 비율, 지방세 징수액 현황, 공기업 부채비율 등을 거론되고 있다. 파산선고 후 지자체의 재정권 외 다른 자치권까지 제한할지, 중앙정부나 시도가 파산관재인을 파견할지, 위원회를 구성할지 등은 아직 검토 중이다. 행정기구ㆍ정원 감축, 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통한 회생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도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안행부는 6월까지 연구 용역과 자문,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안을 마련한 후 12월까지 국회 입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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