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우선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미국의 압박에 직면해 어떤 방식으로든 변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미국은 한일 두 나라에 같은 수준의 '관계개선'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화를 거절해 온 쪽은 한국이라 입장 변화에 대한 부담감도 우리 쪽이 더 큰 상황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해 한국에 보낸 메시지는 매우 공격적이고 분명하다. 그는 13일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 문제 대응을 위해) 한ㆍ미ㆍ일 3자 협력 유지가 중요하다"며 결속을 역설했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현재 문제가 더 중요하다. 한일 양국이 역사는 좀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선 "대통령이 중재할 만큼 부각돼서는 안 된다"며 4월말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앞서 실질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케리 장관은 앞선 7일 워싱턴에서 있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의 회담에서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이에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과의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일본은 끈질기게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의 만남에서 확인된 것은 안보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한다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은 셈이지만 대화를 주장해온 일본보다는 우리 쪽에 가해진 압박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입장은 아직 단호하다. 윤 외교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안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가 본 것은 일본 정치인에 의한 역사 퇴행적 언행, 역사수정주의적 행동이었다"며 "(이런 행동이)계속되는 한 양국 간 신뢰가 구축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관건은 박 대통령이 4월말 한미 정상회담 때까지 이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시작할 명분을 찾는 협상에 돌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4월말이라는 시한이 주어진 것이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며 "그 때까지 한일관계 개선에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의 '새판짜기'가 필요한 상황이며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현명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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