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녹두장군 전봉준이 수만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동학혁명을 이끌었을 때 그의 나이는 만으로 마흔이 채 되지 않았었다. 그보다 10년 전에 김옥균이 동료, 후배들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의 나이는 불과 33세였다. 청장년의 기세가 세상을 뒤흔들었던 때였다.
'푸르른(靑) 기운이 성해진다(壯).' 그 뜻처럼 역사상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자기 인생의 절정을 맞았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해 인류의 사표가 되는 행적을 남겼던 것이 불과 30대 초반일 때였고, 전봉준의 줏대가 됐던 동학을 개창한 수운 선생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담대한 뜻을 품고 스스로 이름을 '제우(濟愚)'로 바꾸고는 대각성을 이룬 것도 30대 중반일 때였다.
120년 전 갑오년의 전봉준을 떠올리며 요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절정은커녕 싹조차 틔우지 못한 청년들의 남루한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들이 취업을 위해 써 내는 자기소개서를 읽을 때, 혹은 면접관 앞에 씩씩하게, 그러나 지극히 다소곳한 모습으로 답변하는 것을 볼 때, 형형색색의 개성으로 빛난 듯 보이지만 이 사회가 허용하는 보이지 않는 선 밖으로는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 아니 감히 그럴 수 없는 처지임을 확인할 때 나는 뭔가 비애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자탄하게 된다. 그건 청년들의 자유분방을 장려하는 듯이 보이지만 '안전기준' 속의 자유, 기성의 치안질서 내에서만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키려는 이중성이다. 예컨대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학교가 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나는 그 이중성을 발견한다. 젊은이들에게 행운과 보상을 주겠다면서, 그러나 어른들의 독설을 공손한 감사의 표정으로 들으면서 복종을 내면화하고 청춘을 순치(馴致)하게 하고야 마는 이 사회의 이중성이다.
젊음의 종점이랄 수 있는 나이를 40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옛 사람은 이 나이를 '부동심(不動心)'을 갖는 때라고 했다. 쉽게 동요되지 않는 진중함과 담담함.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질풍노도의 폭풍우를 거치지 않고는 진짜 부동심은 결코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금지를 금지하는' 불온함을 갖지 못하는 젊음은 펴기도 전에 구부정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개화하기도 전에 시드는 젊음, 그건 청춘의 조로이며, 사회의 조로다. 올해 고삐를 끊고 날뛰는 젊은 청마들을 더욱 많이 볼 수 있기를!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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