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 매체는 13일자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장성택의 사형 집행을 보도한 것은 주민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2면에 '천만 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 만고역적 단호히 처단'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노동신문은 전날 북한이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통해 장성택에 '국가전복음모행위'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뒤 즉시 집행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은 판결문에 대해 "반당반혁명 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 우에(위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라며 규정했다.
하지만 이날 보도된 전문에는 그동안 나돌던 여자문제나 마약 등 사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특히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나 리설주와 연관되거나 여성 문제와 관련된 그 어떤 혐의도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지난 8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밝힌 내용과 틀리다.
당시 확대회의에서는 "장성택이 자본주의생활양식에 물젖어 부화타락한 생활을 했다"며 "녀성들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 뒤골방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렸다"고 밝혔다.
이때문에 이미 여성 편력 등이 알려지면서 김경희가 장성택의 처형까지 수용하려고 여성문제를 확대회의에서 언급하고 전문에는 제외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성택과 김경희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장성택이 ‘바람기’ 때문에 김경희가 장성택의 사형을 막지 않고 고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판결문을 통해 북한의 내부상황을 엿볼 수 있는 점도 보인다. 장성택 죄목을 요약하면 “경제장악→軍장악 →쿠데타 음모”다. 판결문에는 장성택이 민심과 경제를 장악해 총리가 된 뒤에 정권을 잡는 쿠데타의 구체적 과정을 밝히고 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이 쿠데타라는 것이다.
판결문은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 총리 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 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고 적시했다.
특히 장성택의 세력이 당·군·정 등 북한 권력층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도 적잖게 제시됐다.
판결문은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타격을 받고 철직,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북한 곳곳에 퍼져 있는 장성택의 방대한 인맥과 영향력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리기는 불가능한 만큼 장성택의 목숨을 살려두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정치범수용소에 보내 생존시키면 추종세력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가능성도 있고 나아가 김정은 정권을 뒤엎기 위한 장성택의 반격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을 수 있다.
더욱이 부인인 김경희 당 비서도 건재한 상황에서 장성택 세력을 뿌리까지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신속한 처형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성택 스스로도 이날 재판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정변'시도와 관련해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진술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이같은 진술은 장성택 세력의 암약 뿐만 아니라 북한내 내부 불만이 이미 상당한 수위로 악화돼 있어 좀 더 진행되면 결정적으로 위험한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사정을 시사하고 있다. 현재 북한내에는 장성택외에도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이 존재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장성택 일당은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숙청작업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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