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최근 들어 월스트리트에선 “좋은 뉴스(양호한 지표)가 증시엔 악재”라는 말이 정설로 자리 잡아왔다. 양호한 경제 지표가 발표되면 주가는 어김없이 반대로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건전한 경제지표가 계속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 양적완화(QE)를 축소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주 다우지수가 5일 연속 하락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것도 실업수당 신청 건수나 3분기 경제성장률 등이 양호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6일(현지시간)엔 뉴욕증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제지표가 쏟아졌는데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FRB가 가장 중요시하는 경제지표였던 비농업부문 고용지표와 실업률은 모두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당장 시장과 투자자들 사이에선 12월 QE 축소 개시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다우지수는 198.69포인트(1.3%)나 올랐다. 지난 7주 사이 최대 상승 폭이다.
이를 두고 “시장이 QE 축소에 익숙해지고 나름 준비한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이 다수를 이뤘다. QE 축소 결정에 앞서 FRB가 장기간 공을 들여온 시장 길들이기가 효과를 나타냈다는 의미다.
벤 버냉키 의장을 비롯한 FRB 주요인사들은 다가올 QE 축소에 대한 시장의 공포를 줄이고, 시장이 이를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해왔다.
이는 출구전략의 성패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도 시장과의 소통 필요성은 빠지지 않는 주요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아직 FRB의 시장 길들이기 성공 여부에 대한 속단은 이르다. 다우지수는 올해 들어 휴식도 없이 오르며 이미 27% 안팎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언제든 매도로 돌아설 여지는 충분하다.
지난여름 주가 폭락과 통화가치 급락으로 크게 흔들렸던 신흥국 경제를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출구전략 면역성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FRB는 시장에 변동성이라는 ‘발톱’을 들이대며 조련사 역할을 자처했지만, 시장이 FRB에 일격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미국의 출구전략을 둘러싼 FRB와 시장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이제야 겨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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