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정치의 요체는 책임이다. 정치인에게 법적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책임'이 정치의 밑거름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을 두고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을 두고 여당이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에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명분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만큼 그들에게 권한도 주어진다.
국회는 지금 '비정상'에 대한 책임을 두고 공방이 한창이다. 새누리당에서는 황우여 대표의 어깨가 가장 무거워 보인다. 내년 예산안과 정부의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데 야당이 요구하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특위 구성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야 한다. 감사원장 후보자 인준안 처리도 미룰 수 없다.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를 책임지는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정치현안을 여야 대표에게 맡겨 풀어나가자"며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황 대표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협상을 통해 꼬인 정치의 매듭을 풀면, 자연스레 예산과 정책도 해결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황 대표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그에게 협상이 결렬됐을 때 져야 할 '책임' 만큼의 '권한'이 없어 보인다.
여야 대치정국이 이어져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 하면 책임론은 여야 대표에게 쏠릴 수 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27일 "작금의 대치정국은 민주당의 리더십 부족과 불통이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논평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새누리당에서도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정국이 더 꼬이는 이유가 아닐까.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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