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나주석 기자] 정치권이 '댓글 정국' 회오리에 빠져든 가운데 여당과 야당이 각각 '대선불복'과 '헌법불복'을 내세우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야 모두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고, 민주당내에서는 당 지도부와 친노진영이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논란과 관련, 야당을 향해 '대선불복'으로 몰아부치는 것외에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거리를 두면서 여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박 대통령의 입만 바라봐왔다"면서 "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당의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정부에선 박근혜계가 야당 역할을 하며 청와대의 독주를 일정부분 견제했지만, 지금 여당은 사실상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며 "지금껏 박 대통령 지시에만 따라왔던 관성에 젖어 의원들이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할 생각도 안한다"고 진단했다.
"국정원의 5만5000여건의 트윗글은 전체 댓글 중 0.02%에 불과"(최경환 원내대표), "당시 박근혜 후보는 불법이나 부정에 의해 선거를 치르려는 생각은 목숨을 내놓더라도 안했다"(김무성 의원) 등의 메시지만 나오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만들던 '당 진상조사위원회'나 '테스크포스(TF)팀'조차 구성하지 않았다. 다른 당직자는 "우리도 답답한데…"라고만 했다. 이 당직자는 "당 전략기획국에서 매일 대응 전략 보고서를 올리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대동소이한 내용만 보고 된다"면서 "당 지도부는 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 성명이 나왔을 때 매우 감사해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분간 특별한 전략 없이 문 의원처럼 야당이 무리수를 두는 상황이나 박 대통령 메시지를 기다리는 방법 뿐"이라고 언급한 뒤 "대통령 메시지도 재보선이 끝나야 나올 것 같은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주당도 상황이 복잡하다. 박지원ㆍ설훈 의원의 느닷없는 '대선불복' 발언에 가장 놀란 사람은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였다. 곧 바로 정호준 대변인을 통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이번엔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뛰었던 문 의원이 '불공정 대선' 성명서를 발표하며 불씨를 더 키웠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둘러싼 논란 이후 침묵하던 친노무현(친노) 진영도 거들었다.
김 대표와 당 지도부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사초 폐기' 논란으로 친노 진영의 당내 입지가 좁아지면서 이제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댓글 정국'으로 이들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장외투쟁으로 입지를 굳혀온 김 대표 측은 당장 10ㆍ30 재보궐선거가 걱정이다. 두 곳 모두 패할 경우, 책임론에 등 떠밀려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당의 권력구조도 재편된다. 문 의원을 앞세운 친노 진영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문 의원 성명서 발표를 만류하고 문 의원의 성명 직후 "선수가 직접 경기의 공정함을 따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며 불만을 표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 대표는 25일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은 명백한 '헌법불복행위'이고 이를 비호하는 행위도 '헌법불복'"이라면서도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것은 아니다"며 수위를 조절했다.
최은석·나주석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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