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최근 10년간 북한이 남파한 간첩은 총 49명이 적발돼 구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42%인 21명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심재권 의원은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2003년 이후 간첩사건 구속자 현황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역대 정부별로 구속된 간첩은 참여정부 14명, 이명박정부 31명, 올해 출범한 박근혜정부 4명 등이다. 연도별로는 2007~2009년 1~2명 수준이던 간첩 구속자는 2010년 11명, 2011년 8명, 2012년 9명으로 늘어났다.
간첩수가 이명박정부에 들어 늘어난 것은 천안함 폭침 사건 등을 계기로 안보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공안기관이 대공ㆍ방첩활동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적발수도 14건이나 된다. 현 박근혜정부 구속된 4명도 모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었다.
주요 기관별 위장 탈북 간첩의 파견 숫자는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 10명, 정찰총국 5명, 군 보위사령부 3명, 조선노동당 35실 1명, 기타 2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들 간첩의 임무는 국가기밀 탐지, 황장엽 전 비서 등 특정인사 암살, 탈북자의 북한 이송ㆍ재입북 유도, 위장귀순 후 지령대기, 탈북자 동향 파악, 재중 국정원직원 파악, 남한침투 공작원과의 연계, 위폐전환ㆍ재미교포 유인, 무장간첩 소재파악 등으로 나타났다.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늘어나면서 보안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탈북자) 2만명 시대'가 열리면서 합동신문 기간도 늘렸다. 통일부가 제출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국내 입국 후 합동신문 기간을 최장 180일로 명시했다. 이전에는 보통 1개월에서 최대 3개월 정도 선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간첩들의 위장술도 진화했다. 남파 기관도 다양해져 대남공작 전담기구인 정찰총국(인민무력부 산하), 225국(노동당 산하, 구 대외연락부)은 물론 북한 체제 보위를 주된 임무로 해온 국가안전보위부와 군 보위사령부도 대남 공작에 적극 가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종래 탈북자를 소위 '조국반역자'로 취급했다. 그러나 국내 입국 탈북자가 연간 1천명을 넘어선 2000년대 중반부터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침투를 대남공작에 적극 이용하는 전술로 선회했다. 대남공작 조직들이 탈북자 위장 간첩을 침투시키는 이유는 남한 당국의 신문과정에서 일반 주민 출신의 탈북자로 위장할 경우 적발이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신문만 통과하면 합법적인 신분을 획득하고 정착금ㆍ임대주택 등의 기반이 보장되는 점, 해외여행이 자유로워 지령수수 등 간첩 활동의 토대 구축이 용이한 점 등도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북한은 간첩이 신문과정에서 적발되더라도 공작 내용이 노출되지 않고 조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단 국내 침투 및 정착 후 임무를 부여하는 '선(先) 침투 후(後) 지령'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또 중국 등지에서 다년간 정보활동을 하던 자들을 단기 교육 후 탈북자 대열에 편승해 국내로 침투시킨 사례(보위사 직파 간첩 이모씨), 이미 정착한 탈북자 중에서 재북가족을 인질로 삼아 포섭 공작한 사례(보위사 직파 간첩 허모씨) 등도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탈북자들을 합동신문하다보면 우리측의 신문방법을 어느정도 아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면서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들의 지능도 그만큼 진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보당국 관계자는 "최근 남파된 간첩들은 암살이나 주요시설 파괴보다는 시민단체 등을 통한 여론조성 임무를 주로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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