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심리 틈타 취업 관련학원만 나홀로 호황
면접비법·화술컨설팅 등 세분화
취업준비생 경제적 부담은 갈수록 늘어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경기침체로 주요 기업의 신규 채용규모가 줄어들면서 고용시장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스펙쌓기', '취업재수'가 일상어가 된 지는 오래고 절박한 심정으로 각종 학원 문을 두드리는 구직자들이 늘면서 관련 산업만 나홀로 호황이다. 취업 준비생들의 경제적 부담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 하반기 공채 서류접수를 끝낸 삼성그룹은 지원자가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5500명을 뽑는 삼성의 이번 채용에는 10만3000명의 구직자가 몰렸고 현대자동차그룹 9만명(1200명 선발), KT 4만5000명, LG전자도 3만명(1000명 선발)이 지원하며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처럼 기업 공채 경쟁률이 그칠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하자 학원가는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학이나 자격증 관련 학원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서류작성을 비롯해 기업의 인·적성 검사와 면접비법을 별도로 가르쳐 주는 등 채용단계별 취업 학원도 점차 세분화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사투리 교정이나 이미지 컨설팅, 화술을 가르쳐 주는 학원까지 속속 등장하며 구직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해당 학원들은 면접 시 지어야 할 표정부터 걸음걸이, 앉은 자세는 물론 손동작과 인사법까지 교정해 준다고 광고한다.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주영호(가명·30)씨는 "회당 30만원을 주고 면접스킬을 향상시켜 준다는 학원을 다녔는데 머리숱을 지적하며 모발 심는 업체를 소개해줬다. 상술이 너무 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상당기간을 다녔다"고 토로했다.
대학 졸업반인 김민지(25)씨는 "숫기가 없는 성격이 면접 때 불리할 것 같아 컨설팅을 해주는 학원을 다녔다. 대학 등록금에 학원비까지 손을 벌리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영인(28)씨는 "주변에 취업 때문에 여러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솔직히 여유만 된다면 한 번 가보고 싶다"며 "다른 애들은 저렇게까지 준비하는데 나는 뭐하나 불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취업 관련 학원이 난립하면서 구직자들의 절박함과 불안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부분이 비싼 수업료를 받고 있어 취업 준비생들과 부모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취업센터 관계자는 "취직하려고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며 "사투리를 고치려고 월 200만원을 내고 학원을 다니는 학생도 봤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특유의 교육열과 대기업 추구 문화, 기업의 획일적인 인재채용 방식과 의존심리가 강한 젊은 세대의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취업학원 난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의 부모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교육현장에서도 많이 목격하게 된다"며 "취업을 할 때도 주도적이기보다는 뭔가에 의존하고 기대려는 심리가 이런 학원 등장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실장은 "기업 채용 시스템이 지나치게 학벌과 스펙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마저도 변화가 심해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구직자들이 많다"며 "기업을 비롯해 고용정책 전반적으로 인식변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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