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주택정책이 유연해졌다. 정부가 8·28전월세 안정화 대책을 통해 발표한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 가입요건이 한 달 만에 완화된다. 대책 발표 직후 높은 관심을 받았으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한 건의 실적도 내지 못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자 신속하게 보완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다른 대책에도 영향을 미치며 보완조치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대한주택보증(이하 대주보) 등에 따르면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 개정안을 30일 오전 열린 대주보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국토부가 이 안건을 승인하게 되면 대주보는 이르면 이번 주부터 요건이 바뀐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이 보증상품은 집주인의 과다한 대출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깡통주택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1일 출시됐다. 대주보 관계자는 상품 출시 직후 "하룻만에 100통 이상 꾸준히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면서 "가입 조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가장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30일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상품에 대한 관심은 높았으나 가입요건이 너무 까다롭고 필요한 서류가 많아 집주인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주보는 가입 요건을 대폭 완화, 새롭게 상품을 설계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집주인의 부담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세입자가 기본적인 요건을 갖춰 상품에 가입하면 대주보가 집주인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현재는 집주인의 인감증명서, 개인정보제공동의서 등 민감한 서류들을 제출해야 보증서를 발급해주도록 돼 있다.
또 전세자금대출이 있어도 보증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세입자가 전세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채권이 은행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를 넘어서는 등 전셋값이 크게 오른 상황이어서 많은 세입자들이 대출을 받은 상황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주택 가격 대비 근저당 등 선순위채권 비율을 50% 이하에서 60% 이하로 완화했다. 선순위채권과 전세금 총액이 집값의 90% 이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그대로 뒀다. 다만 세입자의 부담을 완화하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이 비율에 따라 보증료율을 차등적으로 부과키로 했다. 현재 보증료율은 연 0.197%로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가입시기도 현재 입주 후 3개월 이내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정부의 대책내용이 한 달 만에 수정되면서 실적이 저조한 다른 상품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번 내놓은 대책을 좀처럼 손대지 않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중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생애최초주택구입 대출 등 일부 상품에 국한돼 있다. 전세금 반환보증과 함께 출시된 모기지보증, 후분양대출보증 등과 목돈 안 드는 전세Ⅰ·Ⅱ 등은 실적이 저조하다.
정부 관계자는 "세입자에게 꼭 필요한 보증상품인데 불편함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고 합리적인 문제제기라고 판단해 수정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앞으로도 시장 상황에 따라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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