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기업인 경영판단 존중하자는 취지의 판단"…배임죄 논란 새 국면 속 SK·금호 재판 영향 전망
[아시아경제 임선태 기자] 대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을 파기환송함에 따라 그룹 총수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배임죄 논란이 새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후 예정된 SKㆍ금호석유화학 총수들의 재판에도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한화그룹 계열회사의 다른 부실 계열회사 금융기관 채무에 대한 부당한 지급보증행위, 한화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부동산을 다른 위장 부실 계열회사에 저가로 매도한 사례 등에 대해 별도의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 원심 판단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계는 우선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대법원이 그동안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업인의 경영판단을 존중하자는 차원에서 배임죄 적용을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경영적 판단을 통해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도 않았고,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치지도 않는 등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전혀 없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사례"라며 "이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이 기업인들의 자율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화 측은 재판 초기부터 김 회장 혐의에 대해 '배임 혐의 적용을 무리하게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2심 선고 직후 한화는 "법조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에서도 성공한 구조조정이며 개인적 이익을 취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며 "(이 같은 이유로) 배임죄가 계속 적용되는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실제 배임죄는 그간 기업인들의 경영판단을 위축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경영적 판단에서 실수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것조차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등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에서도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 등이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개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경우 손해에 따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배임죄의 엄격한 적용을 주문하고 있다.
배임죄를 문제 삼는 핵심 논리는 배임죄의 본질은 윤리적 문제일 뿐, 형사 사건화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지나친 해석이라는 점이다. 특히 경영자에 대해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경제를 위축시키고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배임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높은 무죄율'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9년 손해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적용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법)상 배임 사건은 선고자 379명 중 59명이 무죄 판결을 받아 1심 무죄율이 15.6%에 달했다. 손해액이 5억원 미만인 형법상 배임사건도 1심 선고자 1492명 중 124명이 무죄선고를 받아 8.3%의 무죄율을 기록했다.
경영판단에 대한 배임죄 적용의 또 다른 한계는 법 적용 범위의 과도함이다. 마음먹고 걸면 걸리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의 범죄 적용 방식이라는 의미다. 현행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형성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배임죄 적용 방식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처벌 대상을 더욱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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