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대학강의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데 14년간 1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썼다고 한다.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전문경력인사 초빙 활용 지원사업'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다. 한국연구재단은 2009년 한국학술진흥재단ㆍ한국과학재단ㆍ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당시 과학기술부 산하 3개 재단이 통합되면서 설립된 준정부기관으로 학문연구 지원 및 연구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의원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은 통합 이전 실적을 포함하여 이 사업을 통해 2000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총 1366명에게 1170억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154명(85%)이 행정부 및 공공기관 고위공직자, 군 장성 등 퇴직자이고 이들에게 1123억원(96%)이 지출됐다. 과학기술계 퇴직자는 212명(15%)뿐이고 이들에게는 47억원(4%)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지원받은 이들은 행정부 출신 470여명, 공공기관 출신 410여명을 비롯해 군 장성 220여명, 언론계와 입법부 각각 40여명 등이다.
이 사업은 고급 과학기술자와 사회 주요 분야 경력자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각 지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전수하기 위한 것으로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문사회도 지원대상 분야에 들어 있다. 고위공직자, 장성, 언론계 출신 지원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선정 비율이다. 지원 지침에는 '과학기술계 인사 비율을 50% 이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재단은 이 내부 지침을 스스로 어겼다.
이 사업의 운영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지원을 받으려는 사람은 먼저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접촉하여 강의 개설이나 연구 프로젝트 설정 등을 협의한 뒤 한국연구재단에 지원을 신청한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자신의 사회적 인지도 제고나 대정부 로비를 위해 고위공직 출신을 선호한다. 고위공직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이유다. 선정 기준과 절차가 객관적이고 투명하지 못하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도 최근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연구지원 예산마저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밥그릇이 돼야 하는가. 미래부와 한국연구재단은 당초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즉각 시정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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