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친일파'. 일본제국주의 치하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6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단어다. 친일파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친일 잔재를 청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에 대한 입장 차이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친일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으며, 친일파들을 철저히 가려내 공과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친일파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친일파들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세력의 논리는 대체로 몇가지로 요약된다. "그땐 누구나 다 그랬다"는 것이 첫번째다. 일제 시기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들을 갖고 친일로 매도한다면, 당시 3500만 한민족이 거의 대부분 '친일파'라야 한다는 논리다.
두번째는 "친일은 했지만 과거의 일일 뿐이고, 그동안 세운 공도 있으니 용서해주자"는 이들이 있다. 최근 의복 문화재 지정 추진으로 논란이 된 백선엽 전 육군 참모총장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토벌했던 그는 6.25 전쟁 때에는 북한군ㆍ중국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세번째는 "친일파를 문제삼는 건 북한의 논리"라며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이 친일파들이 참여해 탄생한 남한 정부의 정통성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과 엮어 친일파 청산 주장을 북한에 동조하는 행위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일간베스트' 등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들어 극에 달하고 있다. 예전엔 그래도 대놓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이들이 없었지만, 이젠 공공연히 '친일파면 어떻다고?'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논리들은 사실 워낙 조야해 굳이 대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 어린 아이들과 역사의식이 미숙한 몇몇 어른들의 머릿 속을 오염시킬까 우려된다.
우선, 그땐 누구나 다 그랬다고?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다 죽어간 수많은 애국지사와 알게 모르게 반일 투쟁을 벌여 온 이름없는 민초들이 들으면 통곡을 할 얘기다. 일제 시대에 살았다고 3500만 한민족이 다 친일파였다면, 60~80년대 군사독재시절에 살았던 시민들은 다 군사독재세력이라는 말인가? 더군다나 2004년 제정된 친일파청산특별법 등에 의해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제의 고위 관직ㆍ군 장교 등의 자리에 올라가는 등 '간과 쓸개를 다 빼놓고' 일제에 충성을 바쳤던 이들이다.
공과를 구분하자는 논리를 들이대는 자에게는 먼저 자신의 친일에 대한 고백과 반성이 먼저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용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자신의 친일 행위를 감추는 데 급급해 어떤 반성과 사과도 내놓지 않은 이들에게 용서란 말은 가당치 않다. 자신들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 적이 없는 이들이 있는 한 친일 청산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면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북한이 숨을 쉰다고 따라 숨을 쉬면 그것도 친북이요 종북 좌파라고 할 것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친일 청산에 왜 종북이며 좌파라는 공격을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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