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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외교관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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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외교관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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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서베를린을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명연설을 했다. 공산화된 동독의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케네디 대통령의 이 연설은 마치 '구원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짧은 연설로 공산권에 대해 베를린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고, 미국과 서독 간 동맹은 공고해졌다.


지난 6월 말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유창한 중국어 연설과 중국의 문화, 철학 및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 문화적 감수성으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중국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또는 대중외교란 상대방 국민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외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50여년 전 케네디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이나 최근 박 대통령의 칭화대 연설은 효과적 공공외교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화 간 융합과 소통이 각계각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일반 국민 모두가 외교사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공공외교를 수행할 수 있을까? 효과적 공공외교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간결한 메시지 전달, 재치 있는 유머감각, 그리고 듣는 이에게 신뢰감을 주는 언어를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첫째, 효과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뉴욕 주요 공항에는 홍콩 상하이은행(HSBC)의 메뚜기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다. "미국에서는 메뚜기가 해충이지만 중국에서는 애완용 곤충이고 태국에서는 애피타이저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 필요성을 웅변하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세계화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지구가 나날이 작아지고 있지만 지역 또는 국가 간 문화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넓고도 깊다. 세계인들과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KISS(Keep it short and simple, 단순하고 짧게)하라!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은 3초 만에 결정된다. 지난 10년간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약 15분에서 5분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효과적 소통을 하기 위해서 간결한 의사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다.


셋째, 유머는 글로벌 시대의 필수품이다. 유머는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뿐 아니라 타 문화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 수단이 된다. 필자는 늘 리셉션이나 문화행사에서 상대방 국민에게 친근하고 즐거움을 주는 유머를 준비하여 연설을 한다. 고급 유머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동시에 좌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넷째,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소통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문화 간 소통이 빠르게 진행되는 글로벌 시대에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17세기 영국의 외교관 헨리 워튼은 말하였다. "대사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서 거짓말을 하도록 파견되는 정직한 사람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때때로 거짓말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신뢰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메시지(message)를 마사지(massageㆍ조작)한다면 중ㆍ장기적으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의 외교는 더 이상 소수의 정치인이나 외교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매력적인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습관부터 매력적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희권 주페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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