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역시 '슈퍼'란 형용사가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21라운드 FC서울과 수원 블루윙즈의 K리그 클래식 '슈퍼매치'다. 서울은 2-1로 승리하며 수원전 9경기 연속 무승(2무7패)을 3경기 연속 무패(1승2무)로 뒤바꿨다. 라이벌전다운 시소 게임의 복귀를 의미했다.
내용 면에서도 알찼다. 스코어에서 드러나듯 처음부터 끝까지 일진일퇴였다. 두 수장은 90분 동안 장군과 멍군을 반복했고, 치열한 수싸움은 그라운드 위 격렬한 몸짓과 함께 시너지를 빚어냈다. 4만4000여 관중이 내뿜는 함성까지 더해져 상암벌은 환상적 분위기에 휩싸였다.
▲수원, 초반 승부수가 어긋나다
경기를 앞두고 서울은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전까지 리그 4연승에 홈 6연승의 상승세. 하대성 고요한 윤일록 등 A대표팀을 다녀온 선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 네 명까지 모두 건재했다. 굳이 꼽자면 수비수 김주영의 부상 결장과 '주포' 데얀(데얀 다미아노비치)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 정도가 작은 흠이었다.
반면 수원은 머리칼을 잃은 삼손과도 같았다. 전력 누수가 심각했다. 정대세 김두현이 부상으로 결장 중인 가운데, 설상가상 곽희주마저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스테보(스테비카 리스티치)-제난 라돈치치-에디 보스나 등 장신 외국인 선수가 한꺼번에 빠졌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그동안 힘과 높이의 우세함을 통해 서울을 제압해온 수원이었다. 그런 필살 무기가 사라졌다. 분명 서울이 유리한 경기였다.
이에 서 감독은 시작부터 승부수를 던졌다. 왼발잡이 홍철을 오른쪽에, 오른발잡이 서정진을 왼쪽에 배치한 것. 제공권이 약해진 마당에 직선 돌파에 이은 크로스는 무의미한 터. 대각선 움직임을 통한 직접 슈팅을 노리는 전술을 택했다. 이들과 원톱 조동건-처진 공격수 산토스 사이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를 기대한 측면도 있었다. 특히 서울 수비진이 발이 느리다는 점을 이용해 배후 침투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서 감독은 "우리 공격수들이 신장이 작았기 때문에 상대 수비 교란을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이 공격은 강하지만 공을 빼앗겼을 때 수비 사이사이 공간을 많이 노출하는 편"이라며 "앞 선의 공격수들이 이를 공략해주고, 이용래와 오장은이 밑에서 패스 플레이로 빌드업을 해주길 바랬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기 초반 수원의 거센 공세에 서울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반 볼 점유율 역시 수원이 앞섰다.
문제는 상성이었다. 이날 수원의 전술은 언뜻 제주 유나이티드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유기적인 플레이로 볼을 점유하면서도 전방에서의 빠른 역습과 공간 침투로 상대 약점을 노리는 방식이다.
서울은 누구보다 그런 상대에게 강했다. 당장 제주전만 해도 17경기 연속 무패(11승6무)로 누구보다 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더군다나 이날 수원에겐 제주처럼 송진형-윤빛가람 같은 창조적 공격 전개 능력의 미드필더가 없었다. 김두현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서울 수비수 김진규는 "시작부터 수원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나와 적잖이 당황했다"라면서도 "(하)대성이, 아디 등과 '이 초반 몇 분만 잘 버티면 우리 쪽으로 흐름은 넘어온다'라고 얘기했다"라고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였다. 전반 15분이 지나면서 서울은 하대성-고명진을 중심으로 중원을 장악했고, 덕분에 팀 전체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자연스레 승부의 무게 추는 급격히 서울 쪽으로 기울었다.
▲서울, 상대의 칼을 뺏어들다
흐름이 넘어오면서 이번엔 서울의 역공이 시작됐다. 무기는 상대가 자신들을 베어온 바로 그 칼이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다른 때와 달리 높이에서 도리어 우리가 상당히 유리했다"라며 "수비수들이 세트피스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것은 물론, 상대의 조급함을 역이용하는 역습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노림수는 적중했다. 양 측면의 고요한-윤일록을 중심으로 빠른 역습이 전개됐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프리킥과 코너킥을 얻어냈다. 결국 골도 세트 피스에서, 그것도 수비수에 의해 나왔다. 아디가 전반 29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은데 이어, 김진규가 후반 8분 몰리나의 프리킥을 헤딩 결승골로 연결시켰다. 두 번의 골 장면 모두에서 수원 수비수들은 이들에게 아무런 견제를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수원으로선 주장 곽희주의 부상 결장이 치명적이었다. 강력한 수비와 투쟁심, 승부 근성 등은 그동안의 슈퍼매치에서 늘 빛을 발했다. 대안으로 곽광선-민상기 중앙수비 조합을 내세웠지만 무게감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이에 대해 서정원 감독은 "세트 피스 맨투맨 수비에서 조직력이 다소 부족했던 게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라고 평했다.
▲수원의 반격, 서울의 수성
이후 수원이 뽑아든 반전 카드는 젊은 피. 무더운 날씨는 선수들의 발을 급격히 무겁게 했다. 30대 전후로 구성된 서울 포백에겐 그 하중이 더욱 심했던 터. 이에 수원은 김대경·조지훈·추평강 등 20대 초반의 발 빠른 선수들을 연달아 투입했다.
최 감독의 응수가 이어졌다. 선택은 '잠그기'였다. 몰리나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한태유를 2-3선 사이에 배치했다. 유효한 카드였다. 한태유는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수비수들의 무거워진 몸짓이 만든 빈틈을 메웠다.
서 감독의 마지막 한 수는 중거리 슈팅이었다. 이전의 수원은 같은 상황에서 제공권을 택했다.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한 방'을 노렸다. 지난 4월 홈 1-1 무승부 당시에도 결국 라돈치치가 종료 3분 전 헤딩 동점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더 이상 수원은 높이에서 서울을 제압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태유의 가세로 서울 수비진은 페널티 박스에 더욱 촘촘히 배치된 상황. 유일한 빈틈은 2선 바로 위 공간이었다.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노렸다.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후반 35분 조지훈이 30미터 거리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서울에겐 수문장 김용대가 있었다. 그는 최근 리그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선방을 보여준 골키퍼였다. 후반 40분 조지훈의 슈팅을 막아낸 장면은 수원의 추격의지를 크게 꺾었다. 후반 종료 직전 추평강이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서 반대편 골문으로 꺾어 찬 슈팅 역시 그를 의식한 탓인지 골포스트를 살짝 벗어났다. 그걸로 경기는 끝이었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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